대망의 캘리포니아를 종단하는 날. 전날 프리우스에 연료도 가득 채워둔 나는 전날처럼 7시에 출발해 또다시 LA의 러시아워를 겪으며 친구를 픽업하러 갔다. 8시쯤 도착하고 주인이 없어서 체크아웃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체크아웃하고 나오니 30분이 지난 뒤였다. 나오면서 윌셔 가의 유명한 코리아타운을 뚫고 갔는데, 심지어 버라이즌 스토어도 한글이 난무하는 것을 친구는 신기해하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LA에서 북쪽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101번 고속도로를 타야했다. 그런데 이 날따라 길이 무지하게 밀렸다. LA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고 나서야 정체가 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달리자, 해안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101번 고속도로에서 잠시 빠져나와 해안가에 주차해 사진을 좀 찍으며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101번을 타고 더 북진했다. 길은 해안가를 벗어나 잠시 산길로 들어섰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롬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미 아침을 친구가 숙소에서 간단히 만들어준 딸기잼 + 땅콩버터 샌드위치로 해결한 건 함정.) 어딜 갈까 하다가 친구의 계속되는 미국 햄버거투어(?)의 일환으로 잭 인 더 박스를 가기로 했다. 친구는 치킨버거를 시키고, 양악 수술 때문에 아직 턱을 벌리기가 곤란했던 나는 치킨 텐더를 시켜먹었다. 그 와중에 내가 차던 나이키+ 퓨얼밴드는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맥북을 꺼내서 충전해야했다. 치킨 텐더는 좀 기름졌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북진하기 시작했다. 101번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은 캘리포니아 1번 국도, 즉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Pacific Coast Highway, 줄여서 PCH)로 갈아탔다. 왕복 4차로였던 도로는 2차로로 줄었지만, 아직 길은 쭉쭉 뻗어 있었다. 우리는 중간중간 해안가에 멈춰서 사진도 찍고 했는데, 중간에는 바다코끼리의 군락지도 있었다. 이 때 내가 혹시나 해서 챙겨간 망원렌즈가 유용하게 쓰였다. 여기서 차도 긁었는데, 주차하려고 후진하다가 사이드미러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치워둔 표지판 비슷한 것에 부딪혀 살짝 찍힌 것이다. 다행히도 보험 덕분인지 나중에 따로 수리비가 청구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걸 굳이 수리하겠어…?)
조금 더 올라가자, 쭉 뻗은 길은 곧 굽이굽이 산악길로 바뀌었고, 나는 차를 열심히 몰아붙였다. 그런데 차가 하필 프리우스라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당장 집 차만 몰고 와도 좋았을텐데..라며 나는 한숨을 지으면서 몰면서도, 괜찮은 경관이 나오면 어김없이 차를 세워서 사진을 찍곤 했다. 한 번은 어떤 사람들이 차를 타고 오더니 오는 길에 주유소 본 적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연료도 별로 없고,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왔는데,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기억이 없어서 차라리 계속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차를 먼저 보내고 우리도 따라 출발했는데, 10분 뒤에 우리는 주유소에서 탱크를 채우고 있는 그 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모는 프리우스는 그렇게 험하게 모는데도 리터당 20km 아래로 떨어질 생각을 안 해서 중간에 채울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올라오면서 계속 PCH에서 그나마 빅스비 다리 Bixby Bridge를 찾았다. 문제는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애플 지도나 구글 지도 모두 검색을 해도 뜨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골 해안가라 휴대전화 신호도 왔다갔다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우리가 사진에서 본 기억만으로 빅스비 다리를 찾아야했다. 결국 그 다리는 거의 몬터레이에 다 갈 때 쯤 나왔다.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서 삼각대를 펴고 친구의 NEX 카메라로 장노출 촬영을 했다. 하도 따뜻해서 모르고 있다가 해가 일찍 지는 걸 보고나서야 지금이 1월임을 깨달았다.
몬터레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침 8시에 친구네 숙소에서 출발했으니, 무려 11시간을 운전한 셈이다. 어떻게 이걸 해냈는 지는 아직 생각해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일단 나와봤지만 주변에 있는 게 없어서 결국 내가 LA에서 사둔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고,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기로 했다. 나는 차로 향하고, 다른 숙소에 있던 친구는 버스를 타고 와서 만나기로 했다.
LA의 러시아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와 보니 아침 8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열기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던 상태. 결국 난 주차를 하고 (주차비가 22달러다. 흐미…)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며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개장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우리는 84달러짜리 티켓(참고로, 이게 제일 싼 거다. 줄을 모두 건너뛰고 싶으면 130달러짜리 티켓을 사야 한다.)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날은 굳이 줄을 모두 건너뛰는 티켓을 살 필요가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딜 들어가던 (그 유명한 스튜디오 투어도 포함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10분 아래였다. 오후에 들어간 심슨 라이드 하나 빼곤…
처음으로 가본 곳은 친구가 가고 싶어하던 트랜스포머. 그냥 플랫폼에서 흔들리는 거인 줄 알았더니 그 플랫폼이 레일을 따라 움직인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격렬해서 당황했지만 재밌었다.
그 다음은 쥬라기 공원. 16년 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부터 영 무서워서 못 타던 건데, 이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때가 되었으니 한 번 타보자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탔다. 친구는 물이 확 튈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앉아있는 의자에 묻은 물에 더 젖었다. 배 자체가 물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도록 디자인된 모양이더라. 그럼 그 의자는 어떻게 젖은 거냐
그 다음은 미이라를 갔다. 하도 격한 롤러코스터라는 주의 문구가 많아서 약간 걱정도 됐고, 친구도 자기 혼자 갈테니까 오지 말라며 말렸지만 그 때 하필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해 그냥 따라갔다. 뭐 실내 코스터인데 격해봤자 얼마나 격해지겠냐며. 뭐 결론적으로 아주 격하지는 않았다만, (유니버설에 있는 것 중에서는 제일 격하긴 했다.) 앞으로 갈 길이 없자 갑자기 코스터가 후진을 해서 둘 다 좀 놀라긴 했다. 아래에는 그 유명한 벌레들이 움직이는 듯한 효과도 줬다. 친구가 펄쩍 뛸 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을 뿌려댔다. 아니 왜
그 다음은 심슨 라이드. 이것이야말로 전형적 플랫폼 위에서 흔들리는 기구였는데… 나오는 화면이 좀 아스트랄한 편이라 뭔가 좀 더 극한 상황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를 왔을 때는 시간대가 오후여서 그랬는지 좀 기다려야 했다. 그래봤자 한 25분 정도? 그리고 여기서도 물을 뿌려댔다. 그만 뿌려도 돼…
그 다음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유명한 스튜디오 투어. 물론 16년 전에 가봤겠지만 기억은 안 나고 하니 친구랑 같이 또 갔다. 이곳은 실제로 지금도 영화와 각종 드라마들을 촬영하고 있는 곳이다. 보이스 미국판의 촬영 스튜디오도 여기에 있고, 그 외에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말 다양한 영화들과 드라마들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도중에는 킹콩 3D 라이드라고 해서 스튜디오 투어를 하는 버스를 가둬두고 킹콩이 다른 괴수들(?)과 싸우는 영상물을 틀기도 했다. 그리고 물을 또 뿌렸다. 그만해 이제
나오는 길에는 슈퍼배드 Despicable Me 독점 기념품점에 들어갔다. 미니언을 무지 좋아하는 친구는 미니언 인형 외에도 다양한 머챈다이즈를 들었다 “이건 너무 디테일이 떨어져”라는 식으로 놓기를 수십 번이었다. 30분 뒤, 결국 미니언 열쇠고리와 핀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나도 집에 걸어놓을 자석 하나를 샀다.
가다가 만화방에 들러 (미국은 만화방이 만화책 뿐만 아니라 피겨 등의 온갖 머챈다이즈를 다 판다.) 구경을 하다가 가방에 붙이고 다닐 어벤져스 핀을 하나 샀다.
3시가 되기 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빠져나가 할리우드로 향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문제는 차를 댈 만한 곳이었다. 다행히도 미리 알아둔 근처의 쇼핑센터에 차를 댔다. 여기서는 심지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마셔도 2시간을 무료로 주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위치가 그 유명한 차이니즈 극장과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차를 대고는 할리우드 거리 주변을 서성이기로 했다. 바로 옆에서는 리메이크된 이탈리안 잡에서 주인공들이 미니를 몰고 들어가는 지하철역도 있었고, 스타의 거리도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차이니즈 극장에서 보냈다. 바로 작년에 했다는 이병헌의 핸드 프린트를 찾으며. 하지만 찾지는 못했다. 어디로 빼놓은 건가 싶기도. 다른 배우들만 열심히 찍고 그냥 스타벅스로 와서 쉬면서 커피를 마셨다. 난 점원한테 가서 주차권에 도장 찍고.
그 다음으로 간 곳은 UCLA. 원래부터 친구가 UCLA를 가고 싶어했는데, 시간도 남고 하길래 가보기로 했다. 참, 만약에 차를 끌고 가시면 미리 허가증을 받아두자. 우리는 그런 거 없어서 몰래 주차해야 했다. 이미 학기중이었는지 (서부치고는 좀 일찍인 듯싶다.) 학생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섞여 최대한 관광객인 것처럼 안 보이려 애쓰며 (그런데 카메라 들고 사진 찍으며 다니는데 그게 쉽나..) UCLA 스토어와 학생회관 비스름한 곳을 돌아다녔다. 도서관도 가보려 했으나 길을 잃어서 포기했다.
내일은 대망의 태평양 해안 고속도로를 타는 날.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 공존한다. 과연 몬터레이까지 하루만에 돌파할 수 있을까?
베니스 비치. 이 구역은 원래 로스엔젤레스와는 다른 도시였다고 한다. 해안가의 휴양지 마을로 1905년에 조성된 베니스 지역은 1926년에 로스엔젤레스에 통합되었다. 이 날 친구를 LA 공항에서 픽업하고 공항과 가까워서 와보게 되었다.
베니스 비치에 무려 9달러를 내고 주차를 한 후, 내려서 있는 해안 다리를 걸어보았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 서핑을 하는 사람들, 우리같이 관광하러 온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간간이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갈매기들까지. 이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유히 다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다리를 빠져나와서는 보드워크를 걸어보기로 했다. 걸으면서 해가 지기 시작한다. 5시 정도밖에 안 됐는데. 그제야 우리는 지금이 1월임을 실감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깨닫고 있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야경을 보기 위해 그리피스 천문대에 올라가기로 했다. LA 도시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이 곳은 그리피스 J. 그리피스 대령이 1896년에 기증한 3,015 에이커의 땅 위에 세워졌다. 그는 기증한 땅에 천문대를 지어달라며 공사 대금까지 유산으로 남겼으며, 그의 유언을 받들어 1935년에 완공되었다. 그런데 시리한테 그리피스 천문대를 가자고 하니까 우리를 가정집으로 보냈다. 결국 10분을 돌아서 가야 했다.
2년 전에는 낮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스모그가 너무 심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었다. 이 날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보케도 참 이쁘게 나온다.
날짜: 2014년 1월 5일 장소: Venice Beach, Griffith Observatory, Los Angeles, CA 카메라: 니콘 D300 + AF-S Nikkor 17-55mm F2.8G / Sony NEX-5R + SEL1650P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