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고 살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애플 이벤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형 맥북은 내가 벌써 세 번째로 ‘컨셉트 노트북’이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첫 번째는 맥북 에어였다. 2008년에 나온 맥북 에어는 처음으로 애플이 전면 무선화를 외친 노트북으로, USB 포트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또한, 에어를 위해 인텔이 특별 개발한 CPU도 성능이 애매해 당시 가격 $1,799의 성능이 나오질 않았다. 에어가 지금의 모두가 칭찬해 마지않는 노트북이 된 것은 애플이 디자인을 한 번 뜯어고치고 나서였다.
두 번째는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였다. 이미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도입하고 나서, 애플은 이를 맥에 처음으로 채용했다. 아직 웹이나 다른 앱들이 이에 대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다행히도 맥 앱들은 빠른 속도로 적응됐고, 웹은 여전히 적응이 현재 진행 중이다. (완전히 적응될 때까지는 OS X의 이미지 렌더링으로 어떻게든 땜빵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맥 라인업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작년에는 심지어 27인치 아이맥에도 적용되었다. 이 두 번째 컨셉트 노트북은 나도 샀고, 잘만 쓴지 2년이 넘었다. (그리고 주변에도 쓰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다면 세 번째. 새 맥북을 보도록 하자. 맥북이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비난을 날렸다. 내가 아는 주위 사람들도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모든 비난의 초점은 단 하나. 단 하나의 포트였다. 새 맥북에는 단 하나의 USB-C 단자가 들어간다. 이 단자는 이제 막 상용화가 시작된 새로운 표준 규격으로, 양쪽으로 끼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거 하나로 충전, USB, HDMI 출력 등이 모두 가능하다. 이제 막 상용화가 시작됐으니만큼 지원하는 것이 적은 것도 모자라, 애플은 이 포트 하나만 탑재했다. 지금까지 맥북 시리즈의 충전을 책임졌던 매그세이프조차 빠졌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 포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애플에서 판매하는 어댑터를 쓰는 것뿐이다. (물론, USB-C는 표준이기 때문에 매그세이프와 달리 앞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어댑터가 나올 것은 뻔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계속 이 노트북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그 이유는 아이패드다. 2010년 “포스트-PC”를 당당히 외치며 나온 아이패드였지만, 나는 요즘 내 아이패드를 거의 안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적인 걸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하고 한다면 할 수는 있지만, 많이 불편하다. 특히 글을 쓸 때. 일을 할 때나 과제를 할 때나 글을 쓰기 마련인데, 아이패드의 키보드는 이를 하기엔 많이 불편하다. 처음에야 신기해서 많이 했다지만, 결국은 진짜 키보드가 그리워지기 마련인 것이다. (특히 터치 스크린으로 장시간 타이핑을 한다는 건 고역이다.)
게다가 iOS 자체 한계의 문제도 컸다. 물론 개발자들이 iOS를 위해 좋은 앱 만들기에 힘써주시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에 맞는 앱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앱도 앱이었지만, iOS 시스템 자체도 문제였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나는 아이패드에 키보드와 트랙패드가 달리고, OS X이 돌아가는 무지하게 가벼운 노트북이 나오면 딱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애플은 나의 바램을 정확하게 맥북으로 실현시켜줬다. 사실 맥북의 하드웨어를 면면히 뜯어보면 아이패드와 상당히 흡사하다. 충전도 겸하는 데이터 포트 하나, 레티나 디스플레이, 무지하게 얇고 가벼운 디자인, 보통 사람의 일상적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배터리(웹 서핑 시 9시간). 그 외의 차이점은 전부 내가 바랬던 것들이다. 키보드와 트랙패드, OS X, OS X을 지원할 만한 내부 사양. 이렇게 태어난 신형 맥북은 내가 밖에 나갈 때 들고나갈 수밖에 없는 2kg짜리 맥북 프로보다 더 가볍고, 잉여로운 아이패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나에게 USB-C 단자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따금씩 사진 작업을 하려고 할 때 문제는 되겠다. (SD 카드 리더가 없는 건 좀 그렇긴 하다. 사진을 맥북 드라이브에 옮기고 작업한 다음에 나중에 사진을 저장하는 외장 드라이브에 다시 옮겨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을 거 같다. 아, 그리고 솔직히 맥북의 사양을 보면 라이트룸 정도는 문제없이 돌릴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보통 때의 상황에서 맥북은 나에게 최고의 노트북이다. 아이패드를 팔고 하나 사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너무 앞서나갔다고 해서 그 제품이 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미래에 맞는 사람이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난 오히려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하는 애플을 칭찬하고 싶다. 최근 노트북의 발전은 애플이 거의 다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북 에어를 통해 울트라북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어냈고,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노트북에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직 마이크로소프트가 뒤쳐지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내 생각에는 이번 맥북도 새로운 노트북의 시작일 것만 같다. 아직 정확히 어디로 갈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맥북을 칭찬하는 나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있으니, 바로 가격이다. $1,299(159만원)은 좀 너무하잖아. 리퍼 제품 나오면 그거로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