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트 노트북.
애플은 2008년 다 비슷비슷해보이던 노트북 시장에 일대 파란을 던질 제품을 소개했다. 맥북 에어.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비록 성능은 맥북 에어의 컨셉트를 뒷받침해주지 못했지만, (그 문제는 2년 뒤에야 인텔이 울트라북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밀기 시작하면서 겨우 해결되었다.) 이 노트북은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제품이었다. 바로 유니바디 공법이라 불리우는, 제품 몸체의 구조적 지지를 여러 개의 부품 대신 한 장의 알루미늄 판을 통을 깎아 더 얇아지고 가벼워지면서도 강성을 더 강화시키는 당시 노트북 산업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공법이었다. 유니바디 공법은 맥북 에어의 두께를 실현해낸 일등공신이었고, 이후에 나온 신형 노트북들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쳤다. 왜 맥북 프로 얘기에 맥북 에어 얘기가 나오느냐고?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분명 맥북 에어와는 다른 타깃층을 위해 개발된 모델이지만, 여러모로 맥북 에어와 많이 닮아있다. 똑같이 유니바디 공법으로 만들어졌으면서, 맥북 에어처럼 모든 내부 부품이 밀봉되어 있어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맥북 에어가 그러했듯이, 노트북 시장에 새로운 미래를 선사할 노트북이기도 하다.
맥북 프로와 맥북 에어의 디자인 교배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이하 레티나 맥북 프로)의 디자인을 보면 뭔가 맥북 프로 같은데, 맥북 에어 같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전체적인 디자인 비율은 기존 유니바디 맥북 프로와 똑 닮아 있다. 균일한 두께, (더 얇아진) 검은색 베젤과 유리로 덮여 있는 화면, 매우 정교한 스피커 구멍 등이 그 예이다. (참고로, 스피커는 예전 맥북 프로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천천히 디자인을 뜯어보면 맥북 에어와 닮은 점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모두 왼쪽으로 나 있던 기존 프로와 달리 이제 포트들이 양쪽으로 나 있고, 전원 버튼은 독립적 버튼이 아닌 키보드 키 중 하나로 합쳐져 있다.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훨씬 얇아졌다. 20% 얇아졌고, 25% 가벼워진 15인치 레티나 맥북 프로는 15인치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2kg대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는 심지어 기존 13인치 프로보다도 더 가벼운 수치다. 하지만 전체적 빌드는 기존 프로보다 훨씬 단단하다. 부품들이 더 모여 있어서 더 탄탄해 보인달까.
왼쪽에는 얇아지는 노트북 바디에 대응해 더 넓적해진 매그세이프 2 충전단자와 썬더볼트 단자 두 개, USB 3 단자 (바디가 워낙 얇아서 웬만한 USB 케이블 단자 두께가 더 두꺼울 정도다.) 하나, 이어폰 단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추가적 USB 3 단자 하나와 SDXC 카드 슬롯, 그리고 그동안 맥에서는 볼 수 없었던 HDMI 단자가 달려있다. 드디어. 애플은 외부만큼이나 레티나 맥북 프로의 내부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아래에는 거대한 95Whr짜리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으며, 위쪽에는 프로세서와 메모리, 플래시 스토리지, 그래픽 프로세서가 정교하게 정리되어 있는 보드가 붙어있다. 양쪽에는 발열이 꽤 심할 부품들을 식히는 팬이 있다. 여기에 레티나 맥북 프로는 새로운 냉각 시스템을 더했다. 원래 기존 맥북 프로는 경첩 부분이 냉각을 위한 공기의 출입을 모두 담당했다면, 레티나 맥북 프로에서는 하판 양쪽에 새로운 흡입구를 만들어 공기가 노트북의 내부를 훑어가면서 식히는 공기의 길이 만들어졌다. 또한, 비대칭적인 팬 디자인을 채용해 같은 팬 소음에도 훨씬 거부감이 적다. 흡입구는 또한 노트북 바디의 새로운 구조적 부분이기도 하다.
에어와 닮은 부분은 빠진 것들에도 있다. 광학 드라이브, 이더넷 단자, 파이어와이어 단자가 모두 빠졌다. 케이스의 두께와 내부 면적 문제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제 낡은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히 빼는 것이 애플이기 때문에 아주 놀랍지는 않다. 다만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어댑터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되는 건 좀 아쉽다. 아직도 무선 네트워크가 지원되지 않는 호텔들도 태반이기 때문이다. 굳이 애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기 보다는, 세상의 다른 부분들이 이 노트북을 못 따라오는 기분이랄까. 음악 CD 리핑 때문에 외장 DVD 드라이브도 하나 사야 했지만, 솔직히 이걸 들고 다니진 않잖아?
갤러리 링크 (Flickr)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하나가 되는 레티나 디스플레이
레티나 맥북 프로의 메인 코스는 두말할 것없이 화면이다. 15.4인치 (39.1cm) 크기의 2880×1800 초고해상도 화면은 1인치(2.54cm)당 220픽셀이라는 화소 밀도를 자랑한다. 물론 아이폰 5의 326픽셀이나 아이패드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264픽셀보다는 낮지만, 이러한 기기들보다 좀 더 먼 거리에서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충분히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듯하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처음으로 탑재한 아이폰 4를 지금도 쓰고 있고, 아이패드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몇 번 써봤지만, 15인치 크기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것은 또 색다르다. 게다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는 그저 읽거나 뭔가를 보는 데 불과했다면, 맥에서는 사진 보정 작업이나 동영상 편집 등의 실제 작업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가져오는 효과는 더 크다. 특히 어퍼쳐로 사진을 보정할 때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디테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아래에 간단히 기존 1440×900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던 맥북 프로와 비교해본 샷을 보도록 하자. 두 개의 웹 페이지에서 부분을 똑같은 카메라로 접사 촬영해 비교한 것이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된다.)
화면 패널 자체도 개선이 되었다. 기존 맥북 프로의 패널이 패널 보호용 유리 위에 한 장의 커버 유리를 더 올렸다면, 레티나 맥북 프로는 그 커버 유리를 아예 빼버리고 패널 보호용 유리를 베젤 넓이만큼 늘려 커버 유리를 대신하도록 했다. 유리 층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만큼 색재현율도 올라갈 뿐더러, 반사율도 무려 75%나 줄었다고 한다. 예전 유니바디 맥북 프로 사용자들이 반사 때문에 야외 시인성에 불만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실제로 야외시인성도 기존 글로시 맥북 프로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매트 화면에 비할 바는 못되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다가, 커버 유리가 없어진만큼 내구성이 약하게나마 약해진 점은 감안해야 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언제나 화면 자체만의 공로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지원이 합쳐져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레티나 맥북 프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OS X은 iOS처럼 2880×1800의 해상도를 ¼ 크기인 1440×900의 모습으로 쓴다. 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는 실제로 4배로 뻥튀기되기 때문에 그만큼 선명하다. 그 뿐만 아니라, 1680×1050이나 1920×1200 해상도로도 쓸 수 있는데, 이는 역시나 해당 해상도를 4배 뻥튀기한 다음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다시 다운스케일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화질 저하를 겪지만, 그래도 선택권이 있는 것이 좋은 거다. 또한, 이미지나 동영상은 원본 크기 그대로 표시되기 때문에 사진 작업이나 동영상 작업을 할 때 굳이 계속해서 확대하지 않더라도 자세히 이미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 노트북은 사진작가나 동영상 편집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꿈꾸던 그런 노트북인 셈이다.
이 새로운 노트북의 레티나 디스플레이 또한 처음 나왔을 때는 아이폰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자들은 재빨리 레티나 해상도를 지원하기 위해 발빠르게 나섰지만 실제로 업데이트가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그 외에도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대응되지 않은 웹사이트를 보다보면 그냥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많았었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텀블러 같은 외국 사이트들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거기다 OS X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면서 이미지 업스케일링 기술을 계속 최적화시켜 이제는 옛날같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레티나 디스플레이에도 문제는 있으니, 바로 잔상이다. 한 화면을 오랫동안 띄워 놓았다가 단색의 화면을 띄우면 이전 화면의 잔상이 그대로 남는 문제인데, 결국 복불복인 데다가, 애플이 출시 1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딱히 뚜렷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배경화면을 아예 사진으로 설정해놓는다던가) 잊을 만하면 떡하니 나온다.
타협이란 없다.
레티나 맥북 프로는 여러 면에서 타협을 하지 않았다. 먼저, 최강 성능의 맥 노트북이다. 최고 2.8GHz의 3세대 인텔 코어 i7 쿼드 코어 프로세서, 최대 16GB의 메모리, 인텔 HD 4000 내장 그래픽과 1GB의 DDR3 메모리를 가진 외장형 엔비디아 GT 650M 그래픽 프로세서로 이루어지는 듀얼 그래픽 시스템 등의 하드웨어 스펙은 레티나 맥북 프로의 성능을 증명한다. 사실, 이 정도의 하드웨어 스펙은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거대한 해상도를 가진 노트북을 맥북 프로답게 돌리려면 거의 필수나 다름없다.
그만큼 레티나 맥북 프로는 날아다닌다. 내가 5년동안 쓴 맥북 프로보다 긱벤치 벤치마크 점수가 4배나 높아졌고, 그러다보니 이전에 쓰던 맥북 프로가 힘들어하는 것도 문제 없이 돌린다. 부팅 시간도 단 10초면 된다. 딱 하나 버벅일 때가 스크롤링인데, 상당히 복잡한 웹페이지를 스크롤할 때 프레임 감소가 좀 심한 편이다. 그러나 이는 OS X이 하드웨어 자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고, 실제로 2013년 세계개발자회의 시점에서 공개된 매버릭 시험판에서 새로운 가속화 스크롤링 기술 적용으로 훨씬 부드러운 스크롤링이 가능하다.
이러한 레티나 맥북 프로의 가공할 성능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플래시 스토리지다. 기본 256GB에서 최대 768GB까지 선택할 수 있는 플래시 스토리지는 디스크 입출력에서 일반 하드 드라이브보다 4배에 달하는 가공할 만한 성능을 제공한다. USB 3이나 썬더볼트같은 최신 인터페이스 덕에 전송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또한, 이 플래시 스토리지 덕에 쓸 수 있는 기능으로 파워 냅이 있는데, 이 기능은 레티나 맥북 프로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아이클라우드 동기화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물리적 하드 드라이브를 돌리는 것보다 전력 소모 면에서 더 효과적인 것은 덤이다.
전력 소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배터리 수명 이야기를 빠트릴 수가 없다. 이 정도 성능의 프로 노트북이면 배터리 수명 시간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레티나 맥북 프로의 배터리 성능은 놀랍다. 사파리 탭 5개와 트윗봇 앱을 띄워놓고 계속해서 ‘집중적’ 웹서핑을 1시간 동안 진행하는 배터리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1시간동안 17%가 닳았다. 만약에 똑같은 전력 소모가 계속됐다면 5시간 52분만에 배터리가 다 닳았을 것이다. 내가 ‘집중적’이라고 한 것은 한 번은 5시간을 연속으로 썼는데도 30~40% 정도의 배터리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외장 그래픽 프로세서가 켜지느냐 마느냐에 따라 배터리 시간이 좌우가 되는 듯한데, 이 정도면 밖에서도 상당히 쓸만할 듯하다. 앱 냅, 타이머 병합, 메모리 압축 등으로 전력효율을 더 높인 매버릭에서는 더 좋은 배터리 수명을 기대해볼 수 있을 듯하다.
레티나 맥북 프로가 타협이 없는 다른 부분은 바로 내부 자체 확장성이다. 사용자의 손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메모리는 아예 보드에 납땜이 되어 있으며, 플래시 스토리지는 뗄 수는 있지만 자체 규격이라 대체 부품을 찾는게 쉽지도 않고, 플래시 스토리지이다보니 비싸다. 이렇게 내부를 봉쇄시켜 좀 더 촘촘한 구조로 배터리 용량을 최대로 늘릴 수 있게 되었지만, 업그레이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조금 아쉽다. 그만큼 자신의 사용 케이스를 꼼꼼히 확인하고 구매를 추진하는 것을 추천한다.
노트북의 미래를 보여주는 컨셉트 노트북
자동차 산업에는 컨셉트카라는 것이 있다. 시판용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제조업체들이 미래의 기술을 미리 보여주는 모델이다. 컨셉트카들에서 선보였던 기술들은 대부분 실제로 상용화되어 자동차 기술의 발전에 기여했다.
애플은 이러한 컨셉트카 같은 시도를 많이 했었던 기업이다. 1998년에 선보인 아이맥에서 플로피 드라이브를 빼버린 것도 그러했지만, 맥북 에어라는 모델 자체도 일명 “컨셉트 노트북”의 성격이 강한 모델이었다. 그 동시대에는 매우 비현실적인 노트북이었지만, 그 이후 다듬어 나온 현세대 맥북 에어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사용하는 상용화된 모델이 되었다.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컨셉트 노트북이다. 기존 맥북 프로 라인업 위에 군림하면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2880×1800의 초고해상도 화면을 실현해냈다. 거기에 진화된 유니바디 디자인, 최고의 성능, 가공할 배터리 수명은 컨셉트카가 모두의 꿈 속에 나오는 차이듯이 꿈의 노트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노트북을 쓰다 보면 아직도 몇몇 부분에서는 세상이 이 노트북의 기술에 따라잡지 못하는 듯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것이 바로 노트북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초고해상도 화면이 일상적인 것이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노트북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 미래를 체험하기 위해 내야 하는 댓가는 2.4GHz 코어 i7, 8GB RAM, 256GB 플래시 스토리지를 장착한 기본형의 가격인 275만원. 내가 테스트한 2.7GHz 코어 i7, 16GB RAM, 512GB 플래시 스토리지를 장착한 고급형 모델을 사려면 349만원으로 훌쩍 뛰어 오른다. 전문가용 노트북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노트북의 미래를 지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큰 댓가가 아닐 지도 모른다.
* 일부 이미지 편집에 도움을 준 프렘군(@premist)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2 replies on “[KudoReview] MacBook Pro with Retina Display (15″)”
저도 지금 맥북프로 2008 버전 쓰는데요(파워북 디자인 ㅠㅠ).. 저도 레티나 꼭 사고 싶네요 ㅠㅠ
하지만 당분간은 SSD+옵티베이로 만족하면서 살려구요 ㅠㅠ 리뷰 잘 봤습니다!
메모리와 하드를 그래도 사용자가 바꿀수 있었던 맥북프로가 이제는 붙박이라는게 조금 아쉬워요
그것도 구매할때 전부 옵션으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는다는것도
금액도 램8기가 더 업하는데 25만원 하드 256더 업하는데 37만원선이라니;;;;
거기다 이정도의 투자라면 당연 애플케어를 넣어줘야하는데 그가격도 40만원에 육박하니 이것만 해도 100만원이
오버 된다는건 ‘헉~~’ 소리가 저절도 나옵니다^^;;;
맥북프로를 뜯으며 “자 맥북프로는 맥북하고 달리 이렇게 확장이 가능해”라고 자랑했던 때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