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이 발표 30주년을 맞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스티브 잡스는 가방에서 매킨토시를 처음으로 꺼내 선보였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맥은 다양한 풍파를 견뎌내고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단일 컴퓨터 브랜드로는 아마 최장수 브랜드일 거다.
30주년을 축하하면서, 나의 맥 생활을 뒤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다른 많은 분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맥을 장만한 편이다. 하지만 맥은 그 뒤로 충분히 내 컴퓨팅 인생을 뒤흔들어놓았다.
소유 이전: OS X에 적응하기
내가 맥을 처음 만난 것은 미국으로 유학을 간 지 얼마 안 돼서였다. 당시 나는 연감을 만드는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출판이 주로 하는 일이다 보니 거기에는 맥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모델들은 애플이 교육시장용으로 보급한 이맥 eMac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OS X을 마주쳤고, (10.4 타이거였던 거까지 기억한다.) 아무도 나에게 OS X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나는 독학을 해야 했다. 일하면서도 계속 윈도우와 OS X의 다른 점에 계속 적응해갔다. (가장 힘들었던 개념: “왜 창을 닫는데 앱이 안 꺼지는가?”)
11학년에는 이맥들이 모두 아이맥으로 교체되었고, 그와 동시에 쓰던 노트북이 고장 나 개인용 노트북이 없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나는 연감 사무실에 있는 아이맥에 내 학교 계정으로 들어가 거의 메인 컴퓨터처럼 사용해야 했다. 내 사진 라이브러리, 음악 파일들까지 전부 저장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 거기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고는 학교 내 IT 담당 부서에서 학교 내 데이터를 자기들 다음으로 제일 많이 먹는다고 욕먹기도 했다.) 이 맥으로 학교 상대로 내 최초의 키노트 프리젠테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그 해 초에는 내 첫 애플 제품인 아이팟 터치도 샀다. (당시에는 아이클라우드 따위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 맥에다가 열심히 동기화했다.) 그다음으로 맥을 사는 건 시간문제였다.
2008년 ⎯ 맥북 프로
모델: 맥북 프로 15인치 (2008년 초기형)
구매 일시: 2008년 5월 31일
사양:
- Intel Core 2 Duo T8300 (2.4GHz 듀얼 코어)
- 2GB 667MHz DDR2 RAM (추후 4GB로 자가 업그레이드)
- 엔비디아 8600M GT (256MB 외장 메모리)
- 200GB 5400rpm 하드 드라이브 (이후 500GB 7200rpm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로 자가 업그레이드)
결국 2008년 5월 31일에 용산에서 맥북 프로를 처음으로 사게 되었다. 이 모델의 맥북 프로는 2008년 10월 유니바디 버전이 나오기 전 마지막 모델이다. 곧 유니바디 버전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다음 학기로 돌아가기 전에 필요했으니까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본형으로 샀었는데, 220만원 정도하는 것을 200만원으로 어떻게 네고해서 살 수 있었다. (어떻게 했는 지는 묻지 말자.) 이 할인받은 돈으로 애플케어를 질러줬다.
가끔씩은 학교에 있는 시네마 디스플레이를 빌려쓰곤 했다.
이 맥을 지르자마자 학교로 돌아가니, 학교 공식 사진기자라는 나름 큰 일이 떨어졌다. 나는 역시 당시에 산 DSLR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고, 맥으로 편집을 했다. 포토샵 실력은 영 없었을 때라 (사실 지금도 없다.) 어퍼쳐로 간단히 보정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 초짜였던 때라 보정에 대한 개념도 잘 안 잡혔을 때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진들은 고등학교의 공식 자료에도 쓰였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어떻게 보면 내 맥북 프로는 내가 사진 생활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반자였던 셈이었다.
사촌 누나의 맥북 프로와 함께. 내 것보다도 더 구형이었는데, 지금도 현역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단하다.
내가 이 맥을 쓰면서 놀랐던 것은 오랫동안 썼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옛날의 나는 기기들을 상당히 험하게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전에 썼던 소니 노트북들은 모두 2년을 못 채우고 나가떨어졌다. 물론 이 맥북 프로도 내 험한 습관 덕에 하드도 두 번 나가고, 로직 보드도 한 번 나갔으며, 아래의 고무 패킹은 다 나가떨어지고, 알루미늄 보디도 휜 곳이 있었지만, 무려 5년 가까이 버텼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애플케어 덕분이었다. 맥이 고장 났을 때마다 애플 스토어나 공인 서비스센터에 가지고 가면, 거의 모든 내부 부품을 무료로 수리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을 수리비 걱정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은 모두 보증기간이 끝나면 바로 망가지기 시작한다는데,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보증기간 이후에 잔고장 없이 2년을 더 쓸 수 있었다. (아마 직후에 군입대를 해서 사용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진 것도 이유일 게다.)
2013년 ⎯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
두 번째 맥이 된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맥의 미래를 암시하는 노트북이다.
모델: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 15인치 (2013년 초기형)
구매 일시: 2013년 2월 21일 (수령일: 2013년 3월 6일)
사양:
- Intel Core i7 3740QM (2.7GHz 쿼드 코어)
- 16GB 1600MHz DDR3 RAM
- 엔비디아 GT 650M (1GB 외장 메모리)
- 512GB SSD
나의 첫 맥북 프로를 이을 맥을 찾는 작업은 군대에 있는 내내 진행됐다. 이미 입대 당시에 3년을 넘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맥 미니도 생각했었다. 가격도 싸고, 유학생 신분에 들고 다니기도 편했기 때문이다. (모니터와 키보드는 한국 미국에 하나씩 두고 본체랑 마우스는 캐리어에 던져넣으면 됐거든. 그런데 이건 이제 신형 맥 프로에도 적용된다는 게 함정) 그러나 WWDC 2012에서, 애플은 나의 이러한 모든 계획을 박살 내버릴 만한 제품을 발표해버렸다. 바로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였다. 그 순간부터 다음 맥은 그냥 이 차세대 맥북 프로로 정해졌다. 결국, 2013년 초기형이 나오자마자 군대 사지방에서 주문을 했다. 기본형을 주문했던 지난 프로와 달리 이왕 오래 쓸 거 아쉽지 않게 주문하라는 부모님의 떠밀림(?)에 고급형으로 주문했다. (거기다가 노트북 자체가 자가 업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한 점도 한몫했다.)
새로운 맥북 프로를 받아들었을 때, 5년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통짜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유니바디 본체는 견고해졌고, 성능은 크나큰 발전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화면 덕분에 눈이 많이 호강하고 있다. 사진 편집할 때 엄청난 디테일에 아직도 깜짝 놀라곤 한다. 이 화면에 눈을 이미 버려 외부 모니터를 못 들이고 있는 것도 함정이다. (그런데 데스크톱 환경으로 쓰기에는 화면이 작아 보여서 아쉽긴 하다. HDMI 단자가 4K 지원을 안 하는 건 더 아쉽다.) 배터리 또한 발군이다. 예전에는 배터리 시간이 너무 짧아서 배터리를 쓰는 것 자체가 겁이 많이 났었는데, 7시간이나 가는 이 노트북은 어딘가에 도착하면 무작정 콘센트부터 찾는 습관을 고치게 됐을 될 정도로 오래간다.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어디에 있던 무조건 작업실로 변하게 해줄 수 있었다.
서울모터쇼의 어느 벤치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 새로운 맥북 프로는 내가 매일 하는 사진 편집이나 블로깅, 웹 서핑, 이따금 게임까지 다양한 일을 너무나도 쉽게 소화해내고 있다. 쿠도블로그와 쿠도블러에 쓰는 글들, 내가 공유하는 사진들, 그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모두 이 맥북 프로에서 만들어진다. 이 노트북은 현재에 존재하지만, 아직도 미래의 길을 미리 제시해주는 것만 같다. 이 맥북 프로는 이제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작업을 묵묵히 도와줄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어느 맥이던, 사용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로 내가 맥을 쓴지도 6년이다. 그동안 맥은 내가 컴퓨터를 쓰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옛날에는 이것저것 건드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최대한 순정으로 내버려둔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하지 않던가?) 또한, 지금 하는 많은 일도 맥이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것들이다. 사진이라던가, 지금의 블로깅이라던가 모두 맥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나 외에도 맥은 3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앞으로도 맥은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