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애플페이는 얼마나 내 카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10월 20일에 애플페이가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애플페이는 아이폰 6 시리즈와 신형 아이패드, 그리고 곧 나올 애플 워치가 지원하는 모바일 지갑 서비스이다. 이미 미국의 메이저 카드사(비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메이저 은행들이 동참했고, (현재 미국에 발급된 카드의 83%를 지원하는 셈이라고) 지난 달 발표 이후 한 달만에 500개의 은행들이 추가로 가입해 올해 말-내년 초 런칭을 앞두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애플페이의 기술, 얼마나 보안에 강한가 이런 것들은 건너뛰도록 하겠다. 그냥 실제로 애플페이를 쓰면 어떤가에 대한 느낌이다. 이를 위해(라고 하면 좀 거창하겠지만) 지난주 일요일에 장을 보면서 얼마나 애플페이를 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봤다.
Prologue: 등록
20일에 iOS 8.1 정식 버전이 올라오면서 애플페이가 같이 열렸다. 나는 곧바로 내 아이폰 6에 미국에서 쓰는 직불 카드를 등록하기 위해 앱을 켰다.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쓰는 카드를 애플페이에 바로 등록하는 옵션도 있긴 하지만, 난 아이튠즈 스토어 결제는 페이팔을 쓰기 때문에 카드를 새로 등록하기로 했다.
카드를 등록하는 것은 간단하다. 보통 카드는 대부분 사진을 찍으면 카드 번호, 만료일, 이름이 모두 자동으로 등록된다. 그냥 뒷면에 있는 보안번호만 다시 입력해주면 된다. 일반적인 카드 포맷을 따르지 않는 일부 카드들의 경우라면 물론 직접 입력해주면 된다.
카드 정보 입력이 완료되면, 애플은 이 정보를 은행에 보내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본인확인 과정을 따로 거쳐야할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전화해서 본인인증을 다시 거쳤다. (아마 사회보장번호가 없어서일 듯싶다.) 이것도 앱에서 전화번호를 바로 띄워주기 때문에 편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아예 애플페이 관련 상담 센터를 신설했더라.)
Chapter 1: 동네 한인마켓
내가 사는 세인트루이스는 로스앤젤레스같이 거대한 한인 마켓체인 같은 건 없는 곳이다. 그만큼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은 아니니까. (산다 하더라도 대부분 우리 학교에 있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몇몇 한인 교수님들이 다다.) 그래도 사는 곳이다보니 한인마켓은 있다. 크기는 구멍가게보다 약간 더 큰 수준이지만 라면, 참치 캔 등의 기본적인 것부터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이건 솔직히 사실인 지는 모르겠다만)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오늘 난 여기서 저녁에 먹을 삼겹살과 선배가 부탁한 김치와 김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솔직히 난 여기서 애플페이가 되리라고 생각은 안 했다. 워낙 소규모의 가게니까. 그런데 결제할 때 보니 웬걸, NFC 무선 터미널이 떡하니 달려 있는 것이다. 애플페이를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아도 애플이 카드사와 체결한 계약 덕분(그리고 애플페이의 무접촉 결제방식이 표준을 따르는 덕분)에 카드사의 NFC 터미널이면 다 애플페이가 될 거라고 얘기를 들은 나는 내 아이폰 6를 꺼내들었다.
“무선으로 결제할게요.” 주인 아저씨는 곤란한 모습과 혼란스러운 모습이 섞인 얼굴이었다.
“무선칩이 들어간 카드여야 할텐데…”
“된다고 들어서요…”
“그래요? 그럼 해보죠…” NFC 터미널을 켜는 주인 아저씨의 얼굴에는 아직도 의심이 가득했다.
나도 사실 저렇게 얘기는 했지만 솔직히 확실치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읽어본 것을 믿고 아이폰 6를 갖다댔다. NFC 터미널을 감지한 아이폰이 카드를 바로 불러왔고, 터치 ID에 손가락을 올리자 바로 결제가 완료된다. 경쾌한 “띠링” 소리와 함께. 우리 둘 다 흠칫 놀란다. 서명은 따로 해야했지만 카드를 꺼낼 필요없이 결제가 완료되었다. (직불 카드를 쓰면 핀 넘버를 대신 입력한다.)
“되네요.. 폰 안에 칩이 달려있는 건가요?” 주인 아저씨가 물었다.
“뭐 그런 셈이죠. 이제 애플페이 된다고 쓰셔도 되겠어요.” 나는 웃으며 마켓에서 나왔다.
Chapter 2: 맥도날드
맥도날드는 애플페이의 런칭 파트너 중 하나다. 이미 맥도날드에서 된다는 여러 영상이 올라왔기 때문에 난 지갑을 아예 가방에 찔러넣고 들어갔다. 쿼터파운더 세트를 주문한 다음, 애플페이를 하겠다며 아이폰 6를 꺼냈다.
“저희 그거 안 받아요.” 점원이 말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5s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 질투나서 안 받아요.” 그는 농담조로 말하며 터미널을 켜줬다. 점원과 나는 6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화면 크기가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5s도 충분히 현역이라고. (모든 이전 세대 아이폰이 늘 그러했지만.) 그 동안 애플페이는 역시 쉽게 결제를 완료했다.
Chapter 3: 타겟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타겟이었다. 사실 난 타겟이 애플페이를 지원하지 않을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타겟이 바로 애플페이(와 NFC 지불) 도입을 반대하는 MCX 소속이기 때문이다. MCX는 월마트, 베스트바이 등의 대형 소매점들이 이룬 연합인데, 이들은 내년에 자체적으로 런칭할 커런트C라는 독립 플랫폼을 준비 중에 있다.
상점 입장에서 커런트C는 매우 좋다. 고객의 은행 계좌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라 카드 수수료를 안 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회원에게서 넘겨받는 데이터 덕분에 표적 광고를 하기에도 매우 쉽다. 그러나 QR코드로 스캔하는 방식은 매우 불편하고 (지문만 댄 채로 터미널에만 가져다 대면 바로 결제가 진행되는 애플페이와 비교하면 더더욱) 가입 시에 가져가는 정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운전 면허 번호, 사회보장번호, 생일 등. 이 모든 것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더 웃긴 건, 내년 서비스 목표로 지금 비공개 테스트를 하고 있는 와중에 서버가 해킹당했다는 것이다. 이메일 주소만 유출됐다고는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과연 사용자들이 믿을 지는 미지수다. 시장의 심판을 받고나야 이제 자기들이 얼마나 삽질했는 지 알겠지.
여기서 난 그냥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결제받았다. 커런트C를 쓰는 거보다는 이게 더 안전할 것 같다.
Chapter 4: 홀푸드 마켓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홀푸드 마켓. 유기농 제품을 파는 마켓인 여기 또한 애플페이의 런칭 파트너로, 이미 맥도날드처럼 직원들이 능숙하게 애플페이를 받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채소 몇 가지와 다양한 먹을거리를 장바구니에 담은 후, 계산대에 가 애플페이로 바로 결제했다. 여기서도 서명을 다시 해야했다.
결론
이 날 하루동안 애플페이를 써본 결과, 확실히 편하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긁는 일련의 과정을 그냥 아이폰을 꺼내 NFC에 몇 초만 대고 있으면 바로 인식이 완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학교에서 연구 논문(?)때문에 여러가지 조사를 해보면 애플이 얼마나 보안에 신경썼는지도 매우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 개선이 됐으면 하는 점도 보인다.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결제 인증 후의 문제다. 사인이나 핀 번호를 입력하는 문제. 아니 왜 해야 할까? 터치 ID로 이미 본인확인이 된 상황인데 굳이 거기에다가 추가적으로 인증을 해야할까? 솔직히 이건 애플페이를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NFC 터미널을 탑재한 곳(한인 마켓)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애플페이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동일한 NFC 결제로 생각할테니까. 그런데 이건 애플페이의 공식 파트너인 홀푸드 마켓에서도 똑같았다. 여전히 직접 카드를 꺼내는 것보다는 편했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단계가 남겨진 거 같아 씁쓸하다.
또다른 문제는 애플페이를 지원하는 점포가 적다는 점이다. 일단 애플페이의 런칭 파트너로서 미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22만여 곳의 점포. 여기에 기존에 무접촉 터미널을 지원하는 곳을 포함하면 이보다 좀 더 늘어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미국 전역에 있다고 하는 830만여 곳의 점포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기다가 MCX는 대놓고 애플페이를 향한 전쟁을 불사르고 있는 상황이니, 이 상황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꼬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행들과 카드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용자들이 애플페이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커런트C가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애플이 확실히 NFC 결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과연 애플페이는 그간 지지부진했던 NFC 결제를 전진시킬 수 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