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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doReview] 제이슨 본

박수칠 때 떠났어야 했다

movie_image-5제목: 제이슨 본 Jason Bourne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맷 데이먼(제이슨 본), 알리시아 비칸데르(헤더 리), 토미 리 존스(로버트 듀이 CIA 국장), 줄리아 스타일스(니키 파슨스)

제이슨 본 시리즈는 늘 첩보물 트렌드에서 앞서는 영화였다. 첩보물의 전통적 강자였던 007 시리즈도 영감을 받을 정도로 본 시리즈의 임팩트는 컸다. 현장감 넘치는 격투 장면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치열한 두뇌싸움까지. 3편인 <본 얼티메이텀>은 이러한 본 시리즈의 강점을 잘 보여준 영화였다. 그로부터 9년 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해 나온 <제이슨 본>도 전편과 비슷한 톤을 유지한다. 그런데 9년이라는 시간은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10년보다 겨우 1년 짧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그 사이에 <제이슨 본>은 약간 구시대적인 영화가 됐다.

Jason Bourne (2016)
이번 영화에 새로 나오는 헤더 리는 9년 동안의 달라진 현실을 상징한다.

물론 2016년의 실정을 반영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CIA 국장 듀이와 굴지의 IT 기업 딥 드림의 CEO 애런 칼루어(이 아저씨는 구글 CEO 순다 피차이와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를 섞은 거 같다)의 갈등은 올해 초 있었던 애플과 FBI의 법정 싸움이 생각나게 하고, 이번에 새로 등장하는 CIA의 극비 프로그램 또한 스노든이 유출시켰던 프리즘 프로젝트가 생각나게 한다. (스노든이 언급되기도 한다) 직접 기자에게 팩스를 보내서 정보를 유출시키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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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월의 흔적이여…

하지만 제이슨 본은 똑같다. 문제는 바뀐 세상과 본 사이의 괴리다. 인터넷 시대에서 첩보원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스카이폴>이나 <스펙터>와 다르게, <제이슨 본>은 어디까지나 본의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위의 서브 스토리는 억지로 끼워맞춰진 기분이 들면서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결론적으로 두 개의 스토리가 따로 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 그리고 맷 데이먼이 나온 3부작은 보고 영화관을 향하는 걸 추천한다. 전편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마침 같이 본 친구가 3부작을 전혀 안 봤는데, 시작부터 니키 파슨스가 누군지 설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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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유일하게 돌아온 맷 데이먼과 줄리아 스타일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미없냐? 그건 아니다. 일단 기본기는 확실히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과 줄리아 스타일스와 같은 돌아온 출연진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에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토미 리 존스, 뱅상 카셀 등의 명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볼거리의 스케일도 훨씬 커졌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은 제이슨 본 시리즈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스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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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래도 <제이슨 본>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홍보 포인트 중 하나인 제이슨 본의 귀환 자체가 약간 억지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다 보니 전작들의 강점이었던 치밀함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결국 데이먼과 그린그래스도 ‘억지로 돌아온 속편’의 저주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역시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것이다.

점수: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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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doReview]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욕심이 너무 앞선 두 번째 영화

제목: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s. Superman: Dawn of Justice)
감독: 잭 스나이더
주연: 벤 애플렉(브루스 웨인/배트맨), 헨리 카빌(칼엘/클라크 켄트/슈퍼맨), 제시 아이젠버그(렉스 루터), 갤 가돗(다이애나 프린스/원더우먼)

 

떡밥과 영화적 완성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확장하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면서 경쟁자인 DC 코믹스는 똥줄이 탔을 것이 분명하다. 마블이 내놓은 영화는 이미 10편을 넘어가고 있지만, DC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면서 2013년에 ‘맨 오브 스틸’, 단 한 편만 나온 상황. 그러한 초조함은 소위 ‘DC 확장 유니버스’의 두 번째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제는, 너무 대놓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미 두 번째 영화부터 DC 만화를 이끄는 두 명의 주인공급 캐릭터(배트맨, 슈퍼맨)가 등장한다는 것부터 예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에 원더우먼과 아쿠아맨까지 등장한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불안감은 더 상승했다. 기존 캐릭터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히어로들이 엄청나게 출연하는 셈. 결국, 영화는 예상한 대로 엄청난 떡밥 잔치로 흘러간다. 중간중간 갑자기 나오는 떡밥들은 스토리 진행에 급브레이크를 건다. 중간에 “쟤는 왜 나오냐” 싶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떡밥들을 제외하더라도 감명 깊은 스토리라고 보기도 힘든데, 떡밥들 덕분에 스토리는 더욱 엉망진창이 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떡밥 때문에 욕을 먹었다면, 이번 영화의 감독인 잭 스나이더는 영화 속의 슈퍼맨처럼 청문회에 나가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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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출과 각본은 참으로 안타까운 게,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제대로 한 부분도 많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새로 출연하는 히어로들은 특히 안타깝다. 이미 ‘맨 오브 스틸’에서 주연을 맡았던 헨리 카빌은 그렇다 치더라도, 배트맨 역의 벤 애플렉과 원더우먼 역의 갤 가돗은 이 세계관의 첫 영화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며 데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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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이미 20년 동안 범죄와 싸워온 투사이지만, 지구인이 아닌 슈퍼맨을 처음 보면서 당황한다.

하지만 둘 다 이번 영화에서 정말 멋지다. 애플렉의 경우 지금은 넷플릭스 드라마로 이미지 회복에 성공한 ‘데어데블’을 말아먹은 전적 때문에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무척이나 시끄러웠지만, 결과적으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을 1인 2역처럼 소화하면서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많은 사람이 익숙할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이 (특히 ‘다크 나이트’ 이후) 날렵하고 빠른 배트맨을 추구했다면, 훨씬 큰 덩치를 가진 애플렉의 배트맨은 묵직하면서 힘으로 밀어붙인다. 미국 만화책에 대한 전문가이자 예전 쿠도캐스트에도 출연하신 전적이 있는 티떱님은 배트맨 아캄 시리즈 게임을 해봤다면 애플렉의 배트맨이 꽤 익숙할 것이라고 했는데, 배트맨의 현란한 전투 장면을 보면 꽤 유사한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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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는 원더우먼만 남았다”라고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더우먼은 멋지다.

원더우먼은 이번 영화에서 사실 큰 활약을 보이지 않고 조연 정도에 불과한 비중이지만, 제일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캐릭터의 직접적 발전은 솔로 영화에 미뤄두고, 원더우먼의 능력에 집중한 결과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원더우먼의 등장이 영화의 전개에서는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이라 그 부분은 좀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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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아이젠버그는 마크 저커버그에 이어 또다른 젊은 갑부 회장 역을 맡았다. 어떻게 보면 닮은 거 같기도 하다.

렉스 루터 역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 또한 광기 어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루터도 캐릭터 발전이 상당히 더딘 편인데, 원더우먼은 그게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메인 악역이나 다름없어서 루터의 목적이나 동기가 뚜렷하지 않아 루터를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게 스나이더의 목적이었더라면 큰 성공을 거둔 거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덕분에 아이젠버그라는 명배우를 제대로 못 살렸다는 것이겠다.

영화의 볼거리도 중간중간에 꽤 많은 편이다. 위에서 얘기한 배트맨의 전투 장면이라던지, 배트모빌 추격전 장면이라던지. 다만 스토리에 매끄럽게 녹아들기보다는 뭘 보여줘야 할지 화이트보드에다가 체크리스트로 적어놓고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강하게 온다.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고 툭툭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건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비슷한 전개다. 좋은 소리는 아니다.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팬 서비스와 떡밥이 지나치면 이해못하는 부분만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한 욕심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로 담으려 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겪는 갈등이 우선되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더 집중한 느낌이다. 비슷하게 떡밥 많다고 욕먹은 어벤져스야 그나마 이미 여러 편의 영화가 나와있었다고는 하지만, 얘는 겨우 두 번째 영화다. 미래보다는 현재 캐릭터와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더 힘썼어야 했다. 사람들은 일단 현재를 보고 미래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잭 스나이더는 이번 영화에 현재와 미래를 모두 만족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나보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한 욕심은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현재를 버리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점수: 6.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