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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미니?) 리뷰

제목: 베를린 The Berlin File
감독: 류승완
주연: 하정우 (표종성), 한석규 (정진수), 류승범 (동명수), 전지현 (련정희)
러닝타임: 120분

이 영화의 리뷰를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까. 사실 원래 쓰려던 리뷰도 아니었기에 이런 글은 늘 시작이 힘들다. 베를린은 애초에도 볼까말까 생각을 많이 했던 영화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하지만 마침 딱히 볼 영화도 없었고, 무엇보다 평도 괜찮게 나와서 보기로 단행.

플롯은 정말 흠잡을 곳이 없다.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북파 공작원들과 국정원, 그리고 다른 다양한 조직들의 소리없는 전쟁이 볼만하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잘 이용한 케이스가 되겠다. (이런 걸 잘 이용하지 못한 케이스도 여럿 되기에… 특히 마이 리틀 히어로라던가…) 자칫 잘못하면 플롯이 산만해질 수도 있는데 이를 잘 컨트롤해낸 류승완 감독(각본도 직접 썼다.)의 능력이 놀랍다. 뭔가 다양한 스파이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가 보이지만, 이게 식상해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도 정말 잘 짜여졌으며, 페이스가 시종일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플롯상으로 쓸데없는 장면은 과감하게 뺀 것도 칭찬할 만하다. 정말 플롯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다. 내가 한국 영화를 보면서 플롯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웠던 영화는 정말 최근에 처음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캐릭터 조화도 정말 최고다. 한 명이 툭 튀어나오는 것 없이 조화롭게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게 놀랍다. 무엇보다 류승범의 존재감은 네 명중에서 제일 빛이 난다. 다른 세 명의 배우들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조금 흠이 있었다면, 단역들이 대사처리 면에서 엇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워낙 짧은 분량이라 그러한 느낌도 바로 사라진다. (다른 영화감독들이 우정출연해줬다고 하는데, 음…)

베를린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목할 게 있다면, 그건 액션 장면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약하다는 게 아니다. 반대로 너무 과하다. 정말 멋진 장면들도 꽤 있지만, 일부는 이 영화가 확실히 영향을 받은 듯한 본 시리즈보다도 긴박하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볼거리를 원한다는 것에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었던 듯하다. 어떨 때는 플롯 몰입을 다소 방해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주변 관객들 반응을 들어도 액션 장면때문에 플롯이 헷갈려하는 분들이 꽤 되는 듯했다.) 한 1/5만 줄였어도 좀 더 완성도가 높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불평은 여기까지. 베를린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지금까지의 한국 블록버스터는 식상한 면도 많고, 산만한 면도 많았지만, 베를린은 그런게 없다. 영화제 참석차 베를린을 갔다가 영감이 떠올랐다는 작품으로 보기에는 보통의 완성도가 아니다. 한국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만족스러웠던 것이 오랜만이다. 그만큼 베를린은 전체적으로 볼 때 흠잡을 곳이 많이 없다. 한국 영화에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1,000만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완성도는 1,000만을 찍지 않더라도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것같다.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준 영화. 베를린은 나에게 그런 영화로 남을 것 같다.

Score: 9/10

P.S) 상당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듯하다. 이점은 염두에 두시길. (이건 절대로 책임회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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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폴 리뷰

제목: 007 스카이폴 Skyfall
감독: 샘 멘데스
주연: 다니엘 크레이그 (제임스 본드), 주디 덴치 (M), 하비에르 바르뎀 (실바), 나오미 해리스 (이브)
러닝타임: 143분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그의 표적이 기차 위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기차는 터널을 나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본드의 동료인 이브(나오미 해리스)는 길의 끝에서 소총을 가지고 조준을 한다. 기차가 워낙 빨리 움직이고 있는 데다가 둘이 얽혀있어 쏠 수가 없다. 하지만 무전기에서 MI6의 수장 M(주디 덴치)은 그냥 쏴버리라고 소리친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방아쇠를 당긴다. 보통 다른 액션 영화였다면, 악당이 총을 맞고 이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에 맞은 사람은 다름아닌 본드였다.

위 문단은 스카이폴의 오프닝 시퀀스다. 이 장면은 스카이폴의 전체적 방향을 암시한다. 기존 007 영화와 같으면서도 결국은 뭔가 다른, 올드팬들에 대한 오마쥬가 있지만 신선한 시도는 계속 되는, 그런 영화가 스카이폴이다.

스카이폴이 다른 007 영화들과 상당히 다른 점은 스토리의 초점에서 시작한다. 기존 007 시리즈라 하면, 각각의 액션 장면이 스토리를 이끈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스카이폴은 드라마가 스토리의 뼈대가 된다. 영화는 M의 과거, 본드와 M의 관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세계의 정세 등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 액션을 곁들인다. 이로 인해 제이슨 본 시리즈나 최근 본드 영화들(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가 된 이후로 개봉한 카지노 로얄이나 퀀텀 오브 솔러스)같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셨던 분들에게는 적잖은 실망이 됐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영화를 보기 전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대부분 액션 장면이 많이 없어서 지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야기적 짜임새나 이 사이사이에 배치된 짧지만 큰 액션 장면들이 잘 배합되어 오히려 지겹지 않았다. 이는 물론 내가 스카이폴이 드라마적 내용이 중점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을 미리 한 덕이기도 하다. 즉, 애초에 보기 전에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너무 위에 기술한 전반 시퀀스가 너무 강렬해 이후의 장면들을 묻는 감은 없지않아 있다.

영화 자체는 시리즈의 전통과 (시리즈의 관점에서) 획기적 진행을 많이 섞는다. 아니, 전통이라는 말보다는 오마쥬라는 말이 더 맞겠다. 기관총을 쏘는 애스턴 마틴, 계속 쌓이는 본드의 마일리지(?) 등 마치 샘 멘데스 감독이 ‘옛날 007 영화들. 그땐 그랬지’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멘데스 감독은 거기에 007 영화들로서는 다양한 신선한 시도를 한다. 영화의 거의 반이 영국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점과, 마지막에 저택에서 최후의 결투를 준비하는 본드와 M의 모습은 마치 서부극의 한 장면같다. (솔직히, 나는 나홀로 집에와 NCIS 시즌 5에서 셰퍼드 국장이 사망하는 장면 등이 더 떠오르더라)

영화를 보다보면, 제작진이 꼭 자아성찰을 하는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카이폴의 시점에서 이미 본드는 다양한 임무를 뛴 베테랑이고,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갓 007이 된 신참이었던지라 개연성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는 어차피 007 시리즈가 개연성은 이미 몇십 년전에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려 다 썩어 없어졌기 때문에 그닥 큰 문제는 안된다) 그와 M은 이제 MI6를 목표로 한 사이버 공격에 무력하게 당할 정도로 구식이 되었다. 온갖 컴퓨터 용어(의외로 많이 나온다)를 내뱉는 M의 비서 태너와 젊은 Q(흥미로운 것은, Q를 연기한 벤 위쇼는 엄청난 기계치라는 사실)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기밀 유출로 청문회에 소집된 M에게 국방부 장관이 “이제 잠입 요원에게 정보를 수집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는 장면 등은 꼭 시리즈 자체에 대한 자아성찰인 것만 같다.

스카이폴에는 나오미 해리스와 베레니스 말로히 두 명의 본드걸이 나오는데, 오히려 이 영화의 진정한 본드걸은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신(?) 주디 덴치가 맡은 M이라 할 수 있다. 스카이폴은 어느 007 영화보다도 그냥 주변 인물에 불과했던 M을 거의 주인공급으로 비중을 높였다. 이로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본드와 M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룬다. M을 노리는 실바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도 명연기를 펼친다. 여느 본드 악당과는 달리 M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라는 좀 더 소박하지만, 현실적인 악역으로 그려졌다. M을 향한 광기나 이를 위해서라면 MI6 사이버 및 폭발 테러, 지하철 폭탄 테러 등 정말 뭐든 하는 성격 등은 정말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좀 닮은 구석이 있다. 그 외에도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로 분했던 랄프 파인즈가 SAS 출신 정보 위원회장으로 나와 호연을 했다. 본드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스토리의 모든 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페이스 빠른 장면이 등장하지 않아 중반부가 느려지는 감은 없지않아 있고, 후반부로 가서 페이스가 빨라지다보니 약간의 스토리적 개연성을 포기하는 부분, 그리고 실바가 M에게 원한을 가진 이유 등도 너무 간단하게 몇 분 정도만 언급될 뿐, 좀 더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점 등은 아쉬웠다.

액션 장면이 좀 적긴 하더라도, 스카이폴은 볼거리가 충만하다. 특히 장면장면이 내 아이패드나 맥의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멋진데, 그 중 아주 밝은 곳을 배경으로 보이는 본드의 실루엣을 담은 다양한 장면들은 참으로 멋지다는 말밖에는 안 나온다. 그리고 제이슨 본이나 심지어 전작인 퀀텀 오브 솔러스도 가까이서 짧은 샷으로 정신없이 카메라 흔들어대면서(…) 현장감 있는 격투 장면을 찍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카이폴은 좀 더 느리고, 샷 하나하나도 길게 나오는 편이다. 이따금씩은 몰입도를 과도하게 떨어뜨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으나, 이런 차별성들이 나름 좋았다. 아델의 주제곡 Skyfall이 흐르는 오프닝 크레딧 또한 말을 안할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여자들이 나오는 007 오프닝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크레딧을 제일 좋아했으나, 이번 스카이폴이 그걸 바로 갈아치웠다. 그정도로 강렬했다.

사실 스카이폴을 보기 전에 포스트 준비 관계로 내가 2012년에 본 영화들 중 Top 5를 미리 정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은 스카이폴이 이 순위 리스트에 난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워낙 주변 평도 좋았으니까. (솔직히, 난입하기를 바랬던 것도 없지않아 있다) 예상대로, 스카이폴은 이를 난입했다. 그것도 상위권에.

올해로 007 시리즈는 50주년을 맞았다. 스카이폴에서 본드와 M은 시종일관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그들이 믿는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이는 시리즈 자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다. 50년이라는 시간동안 007 시리즈의 영화들 23편이 나오면서, 세상은 변했다. 특히 세계 정세가 변했다. 시리즈 초기에 본드의 주적이었던 소련 등의 사상의 적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그 빈 자리를 국가적 크기가 아닌 단체적 크기의 테러리스트들이 메꾸고 있다. 실제로 요즘에는 007같은 첩보 요원들이 필요없는 것만 같다. 그와 함께 007 시리즈도 한물이 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카이폴을 통해, 질문은 던져진다. “과연 정말로 필요없는 것일까? 정말로 한물간 걸까?”

Score: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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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doReview] 다크 나이트 라이즈

제목: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크리스찬 베일(브루스 웨인/배트맨), 앤 해서웨이(셀리나 카일), 톰 하디(베인)

애인을 잃고 살인마가 된 하비 덴트가 동전을 뒤집다 배트맨에게 그에게 뛰어든 지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뒤로 하비 덴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의 인생을 정리했고, 하비 덴트의 진실은 숨겨진 채 그의 이름을 딴 하비 덴트 법이 제정되어 고담시는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오래가지 못하고 베인이라는 용병이 등장해 다시금 고담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 과연 브루스는 위기에 빠진 고담시를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배트맨의 가면을 다시 쓰고 베인의 음모에 맞설 것인가?

다크 나이트는 개봉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슈퍼 히어로 영화라는 찬사를 받는다. 올해에야 다크 나이트에 필적할 수 있는 어벤져스가 나왔지만, 어벤져스가 액션의 재미에 초점을 맞춘데 반해, 다크 나이트는 슈퍼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이제 그의 마지막 배트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스토리는 하비 덴트와 레이첼 도스, 그리고 배트포드(…)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를 거의 전부 버렸다. 특히, 다크 나이트 이후 결국은 죽지 않은 조커의 행방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에 대한 이유로 놀란 감독은 조커 역을 마지막으로 요절한 히스 레저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대신에 3부작의 1편인 배트맨 비긴즈의 스토리를 이어간다. 개인적으로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기 전에 전편 둘을 모두 보는 것을 추천하나, 만약에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둘 다 못 보는 상황이라면, 일단 배트맨 비긴즈를 먼저 추천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과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 알 굴이 상당한 연계점을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작 다크 나이트의 스토리가 배트맨보다는 조커의 등장과 하비 덴트의 타락을 그렸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중 배트맨의 출연 비율이 가장 적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통해, 놀란 감독은 8년을 쉬면서 약해진 브루스의 모습과 베인이 등장하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 등을 잘 묘사해낸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가 어렸을 때 우물 아래로 떨어지고 난 후, 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이 구출하러 오면서 하는 대사가 있다. “브루스, 우리는 왜 떨어질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이야기는 이 대사를 그대로 따라간다. 베인의 공격에 의해 몰락을 겪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 이게 바로 어둠의 기사가 다시금 일어선 것(The Dark Knight Rises)이 아니면 뭐겠는가. 영화의 제목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캐릭터들이다. 먼저, 배트맨을 제외한 다른 기존 캐릭터들(알프레드, 루시우스 폭스, 짐 고든 등)의 비중을 거의 공기로 만들어버렸다. 누구는 중간에 사라졌다가 끝에 갑자기 나오지를 않나, 누구는 영화의 1/3을 병원에서 보내지를 않나.

새로운 캐릭터들도 문제다. 분명히 이 영화에 처음 나온 캐릭터들이건만, 영화는 초반부터 이 캐릭터들이 꼭 전편에서도 나온 것처럼 설명을 거의 안 해주는 탓에 자칫 잘못하면 꽤나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배트맨의 적으로 등장하는 베인은 지능과 심리전으로 배트맨을 압박했던 조커와는 달리 엄청난 물리적 힘으로 그를 압박한다. 원래 코믹스를 보면, 베인도 조커 못지않은 지략가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는 순간, 꼭 물리적인 부분만 강조해서 나온다는 것이 내 개인적 불만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의 지략가로서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옛날의 망작 배트맨과 로빈만큼은 아니더라도 물리적 힘만을 앞세우는 것은 많이 아쉽다. 그렇다고 베인을 연기한 톰 하디가 베인을 망치지는 않았다. 역으로, 그는 각본이 망칠 뻔한 베인을 그의 카리스마로 살려낼 수 있었다.

미란다 테이트의 캐릭터도 문제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미란다 뿐만 아니라 셀리나 카일도 꼭 영화에 필요가 있을까란 설전이 오갔다. 개인적으로는 셀리나같은 경우 있어서 영화가 잘 꾸며진 데 반해, (앤 해서웨이의 연기도 볼만하다) 미란다 테이트는 후반부를 위해 2시간 반을 질질 끌고간 캐릭터에 불과했다. 오히려 뺐으면 베인을 훨씬 더 잘 살려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존 블레이크는 그나마 미란다 테이트보다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담당해 ‘없어도 될 캐릭터’ 논란에서는 비껴나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캐릭터 자체가 아닌 그의 약간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성향이다. 어떠한 설명없이 등장해 무러 8년동안 쉰 브루스 웨인을 배트맨으로 복직시키는 인물이라는 것 자체만 봐도 뭔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상영시간이 3시간에 가까운 164분으로, 전작인 다크 나이트보다도 10분이 더 길다. 그럼에도 페이스는 무지하게 빠르다. 다크 나이트는 조커가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고, 하비 덴트가 흑화(?)하는 과정에서 영화가 늘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종일관 빠르다. 특히, 마지막 30분은 너무 빨라서 내용 이해가 제대로 안된다.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상당한 부분의 후반 장면을 편집한 듯한데, 이것이 스토리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 것이 아쉽다.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로 나올 때 뒤의 삭제 장면을 추가시킨 버전으로 출시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렇게 스토리에 관한 문제점이 많아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다른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여전한 수작임은 틀림없다. 슈퍼 히어로 영화를 가지고 많은 의미를 함축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영화가 바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비록 놀란 감독 자신은 부인하지만) 베인이 고담시를 점령하고 나서 고담이 변해가는 모습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혼란기를 생각나게 하고, 끝없이 추락한 브루스 웨인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히려 평범한 블록버스터인 줄 알고 보셨던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가 너무 심오해 부담스러우셨던 분들이라면, 이보다 좀 더 스토리적으로 심플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이 “내가 지금까지 찍은 영화중 가장 크다”라고 한 말에 걸맞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크다. 미국의 주요 도시를 돌면서 영화를 찍었는데, 특히 마지막 전투가 펼쳐지는 곳은 –망해가는–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유명한 뉴욕의 월가다. 다양한 로케이션만큼이나 CG를 최대한 지양하는 놀란 감독의 고집 덕에 영화는 실감나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실제로 플랫폼에 매달려서 나는 연기를 했다는 더 배트나, 실제로 미식축구 경기장을 폭파시켰다 하는 경기장 폭파 장면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정말로 볼거리 면에서는 3부작 중에서 가장 많다. 이러한 볼거리들도 3시간을 광속으로 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다른 영화들을 제쳐두고, 다크 나이트에 이은 엄청난 기대가 가장 큰 적이다. 다크 나이트가 너무나도 명작이었던 것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게는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렇게 다크 나이트와 비교를 하다 보니 이 글에도 지적을 하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보다 수작일 것이다라는 기대만 접는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체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수작이다. 또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을 잘 마무리한 최고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Score: 9.3/10

P.S) 나같은 경우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관에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만큼은 아미맥스관에서 보리라 마음먹고 겨우겨우 구석자리를 예매하여 봤다. 자리가 좋지 않았음에도 왜 아이맥스 아이맥스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중에 자리 좋은 곳에서 다시 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