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야망과 완성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제목: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Avengers: Age of Ultron
감독: 조스 위던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크리스 에반스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헴스워스 (토르), 마크 러팔로 (브루스 배너/헐크), 스칼렛 요한슨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 제레미 레너 (클린트 바튼/호크아이), 애런 테일러 존슨 (피에트로 막시모프), 엘리자베스 올슨 (완다 막시모프)
상영시간: 142분
첫 어벤져스가 2012년에 개봉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이미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팬들의 걱정은 대단했다. 각자 주연이 될 만한 가치가 충분한(그리고 일부는 이미 최소 한 번은 독립 영화에서 주연이었던) 여섯 명의 히어로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감독이었던 조스 위던은 해냈고, 전세계의 팬들은 그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더이상 거대해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더욱 더 거대해져 있었다. 어벤져스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고, 설정은 더욱 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과연 조스 위던은 또다시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쉴드가 붕괴된 후, 어벤저스는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본 스트러커 남작이 소코비아에서 로키의 셉터를 이용해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어벤저스는 기지에 총공격을 감행해 셉터를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 어벤저스가 없어도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할 존재가 필요했던 토니 스타크는 셉터 안에 AI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울트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울트론은 오히려 인류에게 평화가 찾아오려면 인류를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 토니를 배신하고, 거기에다가 셉터를 이용한 하이드라의 실험으로 초능력을 얻어 토니와 어벤저스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시작한 막시모프 남매 때문에 일은 더욱 꼬이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잠재적 위험은 어벤져스와 비슷하다. 사실, 어벤져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어벤져스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나오는 데다가 (악역이었던 로키와 사망한 ‘줄 알았던’ 콜슨은 제외) 거기에 새로운 능력자 셋, 수현을 포함한 조연도 여럿 등장한다. 거기에 페이즈 2에서 새로 출연했던 히어로들(팔콘 등)까지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캐릭터 잔치이자 감독인 위던 입장에서는 악몽이었을 거다. (실제로 조스 위던은 이 영화를 감독하면서 느낀 피로감 때문에 이 영화를 끝으로 하차했고, 속편인 인피니티 워는 윈터 솔져를 감독했던 루소 형제가 맡을 예정이다)
다행히도, 위던은 이를 해냈다. 그러나 어벤져스와의 차이점이라면 어벤져스에서는 여유가 있었지만,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매우 아슬아슬했다는 점이다. 이 차이점의 이유는 바로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덩치가 너무나도 커졌다는 것이다. 이미 에이지 오브 울트론 시점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동시에 벌어지고, 이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모두 하려니 결론적으로 시간이 매우 부족하게 되어 약간 급하게 풀어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결국 플롯의 산만함으로 연결되고, 특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스토리를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본의 아니게 팬서비스의 성격이 더 강한 영화가 됐다. 이전 마블 영화들을 하나도 안 보셨다면 ‘최소한’ 어벤져스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시청은 필수다. 조스 위던에 따르면 1차 편집본은 3시간 15분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최종 극장판은 이보다 한 시간 가까이 짧다. (2시간 22분) 아마 이 삭제된 장면이 포함된 확장판이 나온다면 좀 더 플롯 설명이 용이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어벤져스와 또다른 차이점 하나가 바로 캐릭터 드라마다. 이러한 드라마가 거의 전무했던 어벤져스와 달리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막시모프 남매의 성장과 의외의 로맨스, 그리고 계속되는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의 갈등 등 다양한 드라마가 깔려 있다. 이것이 영화가 산만해지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 자체를 잘 뜯어보면 매우 잘 짜여져 있는 편이다. 역시나 확장판이 나온다면 좀 더 잘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소 3년, 최대 7년 동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들이다보니 각자의 역할이 매우 편해보인다. 하지만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정말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이는 것은 새로운 캐릭터들이다. 제임스 스페이더는 중2병을 앓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울트론 연기를 해내었고, 특히 의외로 영화의 플롯을 이끌게 되는 캐릭터가 된 완다 막시모프 역의 엘리자베스 올슨도 선전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볼거리는 어벤져스 때보다 더 강화됐다. 전편에서 각광을 받았던 팀워크 연계 공격 장면은 이번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더욱 강화되어 나오고, 전체적으로 전투 장면의 연출이 더 치밀하게 짜여 있어 지겨울 틈이 없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헐크 대 헐크버스터의 대결은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모두가 기대했다가 실망한 서울 장면의 경우, 내 생각보다는 꽤나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비중도 꽤 컸다. 그리고 지하철 논란은… 생각도 말자.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팬들에게 최고의 팬서비스를 제공할 영화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보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이어지는 3단계의 기반을 다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 영화에 건 마블의 욕심이 너무 크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세계관의 판도, 영화적 완성도의 판도 (특히 작년에 대박을 친 두 영화 덕분에) 훨씬 커진 상황에서, 마블은 이제 이 두 요소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방법을 연구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지만, 이대로 인피니티 워에 진입한다면 위험한 상황이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