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어제 RIM의 첫 태블릿 플레이북이 다음주 출시를 앞두고 리뷰 엠바고가 풀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엔가젯, 조쉬 토폴스키(토폴스키옹은 엔가젯에서 나왔다), 월트 모스버그, 데이빗 포그 등 다양한 분들이 쓴 리뷰들을 쫙 읽어보면, 공통된 의견은 대략 이렇다:
- 하드웨어 자체는 킹왕짱. 플래시를 이렇게 부드럽게 돌리는 모바일 기기는 처음.
- QNX OS 자체는 꽤나 부드럽게 돌아감.
- 블랙베리가 있어야만 이메일을 쓸 수 있는건 (브릿지) 멍청함 (플레이북 자체로는 이메일을 쓰려면 웹 브라우저를 켜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스타일.)
- 앱 월드에 쓸만한 앱이 없다.
- 소프트웨어의 불안정함: 1주일간의 리뷰기간 중에도 세 번정도 업데이트를 받았고(브릿지는 심지어 리뷰 엠바고 풀리는 날에 업데이트가 떴다고), RIM 측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기본 기능들이 ‘추가될 예정’이라고 함. (블랙베리 OS 및 안드로이드 에뮬레이션 포함)
등이다. 결론적으로, 실망을 많이 했다는 소리다. 이러한 리뷰들이 하도 많다보니, 결국 RIM은 오늘 주식이 무려 4%나 급락했다고.
하지만, 플레이북 얘기는 여기까지다. 내가 오늘 정말 이 포스트를 쓰는 이유는 바로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바로 플레이북에 대한 리뷰를 보고 RIM의 중역들이 보인 반응들이라는데 하나둘씩 살펴보자.
공동 CEO 마이크 라자라디스: “(플레이북은) 더 우월하다. 휴대성이 더 좋고, 더 가벼우며, 더 오랫동안 들고 있을 수 있다.”
라자라디스는 결국 7인치 크기의 장점을 내세웠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갤럭시 탭을 리뷰할때 나도 7인치 크기의 가벼움이 좋았으니까. 근데… 단순히 이것때문에 ‘더 우월하다 (more superior)’라는 단어를 쓰는건, 라자라디스 특유의 거만함이 보이는 것이다. 7인치 크기의 단점은, 결국 화면의 10인치대의 반이 되기 때문에 화면공간을 활용하는 데에 태블릿으로 쓰기에 조금 애매한 사이즈가 된다는 것인데, 설사 QNX OS가 그 화면공간을 잘 썼다 하더라도, 분명 더 넓은 화면을 원하는 사용자들도 많을 것이다. (플레이북 얘기 더이상 안한다면서 결국 했다.)
공동 CEO 짐 발실리: “(리뷰들은) 공평하지 않다. 6,000만대의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이메일을 버젓이 사용할 수 있다. 플레이북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블랙베리의 안전하고 공짜인 확장을 원할 것이다.”
결국, 이 글을 쓰게 만든 문제의 발언이다. 일단, ‘공짜’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블랙베리폰을 사면 플레이북을 준다는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추가적 데이터비 없이 확장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브릿지가 블랙베리에서 테더링 기능도 지원한다)… 그건 넘기고, 더 큰 문제는 그 문장 자체다. 여기서 이 아저씨는 자폭해버린다. 아니 당신들의 목표는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뛰어넘는거 아니었어? 그냥 블랙베리 사용자들한테만 팔아먹을려고 플레이북을 만들었단 말야? 결국 RIM은 플레이북을 만들 때 더 많은 블랙베리 플랫폼 사용자를 유치하기 위한게 아닌, 결국 블랙베리 사용자들이 다른 태블릿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플레이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참으로… 뭐랄까. 소박한 목표다.
이 공동 CEO들, 특히 라자라디스의 행적은 웃음이 나올 정도다.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인도와 중동국가들과의 마찰(이 국가들은 RIM이 BIS 서버를 국내에 두기를 원했다. 물론 감시를 위해서다. 참고로, BIS 없으면 블랙베리의 인터넷 자체가 불가능하다.)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기자가 이를 밀어붙이자, 결국 강제로 인터뷰를 종료시켰다는 훈훈한(?!) 마무리다. 이 아저씨가 얼마나 다혈질인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심지어 그 성깔 안 좋기로 유명하다는 스티브 잡스도 안 이러는데.
RIM의 문제가 여기서 나온다. 혁신을 위해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너무 방어적이다. 마치 열심히 공부를 하지는 못할망정, ‘이정도면 됐겠지…’ 라면서 그냥 최소한의 것만 하고 노는 대학생같다. (옛날의 나를 연상시킨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는 행동도 완전히 똑같다. 자신이 왜 놀고 있었는지 변명하는 것처럼. 이는 이미 유출된 2011년 블랙베리 라인업에서도 계속된다. 일단 모델명만 늘어놓아보겠다: 볼드 터치, 토치 2, 스톰 3. 이름만 봐도… 결국 재탕이란걸 알수있다. 볼드 터치는 볼드(우리나라에서 토치를 제외하면 결국 보이는 블랙베리중 대부분이 다 볼드다)에 그냥 터치 스크린 갖다 박아놓은 것이고, 토치 2는 작년에 선보인 터치 스크린 슬라이더 토치에 고해상도의 화면과 더 성능이 좋은 CPU 등을 탑재했다고 한다. 만져본 사람 말로는… “토치가 이랬어야 하는데…” 란다. 심지어 디자인도 바뀐게 없다. 스톰 3는… 그간 두 번이나 실패한걸 다시 고쳐보려고 하는 것이고.
이전에 올린 엔가젯에서의 글처럼, 지금 대기업 고객층이 아닌 이상, 블랙베리가 다른 고객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건 결국 BBM과 (내가 지금 따로 추가한) 그 쫀득하다는 (그리고 난 적응이 안된다는) 키보드다. 물론 이거에 훅 넘어가는 블랙베리 팬들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몇 있기는 한데, 정말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걸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용자 베이스를 계속 잡고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앱도 너무 부족하고, OS는 결국 10년된 구닥다리고, 살짝 난해한 인터페이스까지… 이 목록은 게속 된다.
RIM의 가장 큰 혁신이 될 것 같았던 플레이북은, 결국 RIM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제품이 되고 말았다. 모바일 산업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걸그룹 같다: 우후죽순 제품들이 나오고, 트렌드도 쉽사리 바뀐다. 개중에서 소녀시대나 원더걸스가 (그나마) 장수하고 계속 인기를 끄는것은, 결국 이 트렌드를 읽고 빠르게 이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걸그룹은 그냥 비유에 불과했으니 팬분들은 이거가지고 또 화내지 마시길… 비유는 비유일뿐!) RIM은 이 트렌드 읽기에 실패하고 위험수위에 다다라 있다. RIM만의 이러한 트렌드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대기업 고객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플레이북을 기로로 이제 RIM은 끝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RIM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바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굉장히 바보같이 굴어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