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iOS 9을 리뷰할 때, 애플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iOS 9은 단순히 애플이 성능 개선에만 신경 쓴 버전은 아니다. 애플이 iOS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물론 현재로서는 모든 기능이 완벽하진 않지만, iOS 9은 앞으로 애플이 계획하고 있는 iOS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현재로서 봤을 때 꽤나 좋아 보인다.
iOS 7에서 애플은 대대적인 디자인 변경을 했다. 안 바뀐 것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의 큰 변화였다. iOS 8에서 애플은 익스텐션이라는 개발자 기능을 추가했다. 간단히 말해, 하나의 앱에서 다른 앱의 기능을 일부 불러와 작동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iOS 9는 이어폰을 꽂으면 자주 쓰는 앱을 띄워줄 수 있는 기능이나, 메일에서 연락처 정보를 수집해 전화가 올 때 알려주는 능동적 비서 기능이 추가됐었다. 모두 기계 학습을 통해 기기 내에서 처리하는 기본적 인공지능이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iOS 10은 7에서 9까지 깔아놓았던 기초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제목: 제이슨 본 Jason Bourne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맷 데이먼(제이슨 본), 알리시아 비칸데르(헤더 리), 토미 리 존스(로버트 듀이 CIA 국장), 줄리아 스타일스(니키 파슨스)
제이슨 본 시리즈는 늘 첩보물 트렌드에서 앞서는 영화였다. 첩보물의 전통적 강자였던 007 시리즈도 영감을 받을 정도로 본 시리즈의 임팩트는 컸다. 현장감 넘치는 격투 장면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치열한 두뇌싸움까지. 3편인 <본 얼티메이텀>은 이러한 본 시리즈의 강점을 잘 보여준 영화였다. 그로부터 9년 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해 나온 <제이슨 본>도 전편과 비슷한 톤을 유지한다. 그런데 9년이라는 시간은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10년보다 겨우 1년 짧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그 사이에 <제이슨 본>은 약간 구시대적인 영화가 됐다.
물론 2016년의 실정을 반영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CIA 국장 듀이와 굴지의 IT 기업 딥 드림의 CEO 애런 칼루어(이 아저씨는 구글 CEO 순다 피차이와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를 섞은 거 같다)의 갈등은 올해 초 있었던 애플과 FBI의 법정 싸움이 생각나게 하고, 이번에 새로 등장하는 CIA의 극비 프로그램 또한 스노든이 유출시켰던 프리즘 프로젝트가 생각나게 한다. (스노든이 언급되기도 한다) 직접 기자에게 팩스를 보내서 정보를 유출시키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똑같다. 문제는 바뀐 세상과 본 사이의 괴리다. 인터넷 시대에서 첩보원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스카이폴>이나 <스펙터>와 다르게, <제이슨 본>은 어디까지나 본의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위의 서브 스토리는 억지로 끼워맞춰진 기분이 들면서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결론적으로 두 개의 스토리가 따로 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 그리고 맷 데이먼이 나온 3부작은 보고 영화관을 향하는 걸 추천한다. 전편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마침 같이 본 친구가 3부작을 전혀 안 봤는데, 시작부터 니키 파슨스가 누군지 설명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미없냐? 그건 아니다. 일단 기본기는 확실히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과 줄리아 스타일스와 같은 돌아온 출연진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에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토미 리 존스, 뱅상 카셀 등의 명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볼거리의 스케일도 훨씬 커졌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은 제이슨 본 시리즈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스케일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이슨 본>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홍보 포인트 중 하나인 제이슨 본의 귀환 자체가 약간 억지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다 보니 전작들의 강점이었던 치밀함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결국 데이먼과 그린그래스도 ‘억지로 돌아온 속편’의 저주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역시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것이다.
1996년 전쟁(1편의 이야기)으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외계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승리로 이끈 인류는 전세계가 하나로 뭉쳐 전쟁 없는 평화를 유지한다. 그리고 데이빗 레빈슨(제프 골드블럼)은 외계인의 기술을 연구해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지구 우주 방어국(ESD)의 국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내면적으로 언젠가 외계인이 돌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외계인은 더욱 강력한 기술로 무장해 지구를 다시 침공한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이하 리써전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구식이다. 일단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가 20년 전에 나왔던 전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플롯이 모두 영화가 보여줄 파괴적 볼거리를 위해 설계된 느낌이 강하게 들고, 영화에서 묘사되는 일부 인물 관계는 작위적이다. 특히 두 젊은 주연인 제이크(리암 헴스워스)와 딜런(제시 어셔)의 라이벌 관계는 30년도 더 된 <탑건>을 보는 것 같이 너무 뻔하다. 인물 관계를 표현하는 능력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속편에 대한 떡밥까지 넣느라 스토리가 약간 산만해진다.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영화를 즐기는데 있어 문제가 되진 않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스토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뭔가 이상한 점 때문에 신경을 쓰게 만든다면, <리써전스>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냥 볼거리를 즐기다보면 위에 나열한 문제점들이 잊혀진다. 비슷한 종류의 스토리텔링이지만, 기본기는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투모로우>나 <2012> 등 다양한 재난 영화를 만든 에머리히 감독이 발전한 부분이라 볼 수도 있겠다.
위에 말했듯이 속편에 대한 떡밥도 약간 있다. 에머리히의 “(<리써전스>가 잘 되면) 제작할 것”이라는 발언을 반영하듯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처럼 대놓고 클리프행어로 끝내지는 않는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 시작된 사건은 뒤끝없이 깔끔하게 끝낸다. 이건 마음에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데이빗 레빈슨으로 분하는 제프 골드블럼이나 1편의 독립기념일 연설만큼의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 빌 풀만은 20년만의 복귀임에도 편안하다. 거기에 리암 헴스워스나 마이카 먼로, 제시 어셔와 같은 새로운 배우들의 활약도 볼만하다. 리암 헴스워스는 어떤 면에서 친형인 크리스가 연기하는 토르의 개그감을 묘하게 물려받은 느낌이다.
볼거리도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확실히 20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보였다. 4,800km짜리 거대 모선이 대서양에 착륙하는 모습이나 엄청난 파괴, 대규모 전투 장면 등은 인상적이다. 여러모로 영상미는 1편보다 훨씬 발전했다. 다만, 확실히 1편 때의 충격만큼은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에는 1편만한 압도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던 영화가 없었다. 그 때 경쟁한다고 개봉했던 외계인 침공 영화가 바로 팀 버튼의 <화성침공>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 영화를 기억하지 않지만. 그런데 지금은 압도적인 CG를 자랑하는 영화가 널렸다. 영화도 모자라 요즘은 드라마도 CG를 마구 쓴다. 주변 환경이 변한 것이다.
20년 동안 블록버스터 영화는 진화했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는 20년 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몇 가지 현대적 터치를 더했어도, 20년의 간극이 별로 크게 안 느껴진다. 이게 나쁜 건 아니다. 오랜만에 이런 고전 스타일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즐길 수 있는 건 반가웠다. 하지만 요즘같이 치밀하게 얽혀진 스토리를 가진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했을 때, 예전같은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게 이 시리즈의 한계가 될까. 답은 3편에서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