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폰 라인업 뒤에서 돌아가는 복잡한 사정들.
9월 10일(현지시각)에 발표된 두 대의 아이폰 중 아이폰 5c가 오늘부터 1차 출시국(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등 10개 국가)에 한하여 먼저 예약판매에 들어갔다. 이미 몇개월 전부터 수많은 유출이 있었던 지라 5c에 대한 반응은 꽤나 차가운 편이다. 특히, 고급형인 아이폰 5s보다 ‘겨우’ 100달러 더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게 정말 저가형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엔 이렇다: 아이폰 5c 는 저가형이 아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애플의 전반적인 아이폰 전략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기존 전략
애플이 아이폰을 파는 기존의 전략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 해에 출시되는 최신형이 고급형이다. 작년을 예로 들면 그것이 아이폰 5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그 전 해에 최신형이었던 4s가 있고, 그 아래에 2년 전에 최신형이었던 4가 포진해 있는 식이다.
애플로서는 그러한 전략이 개발비도 따로 들지 않는 데다가 iOS의 지원에도 유리하며, 사용자들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한 대의 최신형 대신 구형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도 있었다. 모두가 좋은 솔루션이었다.
발생하는 문제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애플이 구형으로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시장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올해에는 아이폰 5뿐만 아니라 갤럭시 S4 등 고급형 스마트폰들이 눈에 띄게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는 스마트폰들의 스펙이 어느정도 상향평준화가 된 상황에서 더이상 소비자들이 고급형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나라같이 예외 범주에 들 만한 나라들도 아직도 S3가 잘 팔리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애플은 지난 두 분기를 아이폰 5보다 아이폰 4s와 4를 더 많이 팔아치우면서 지켜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플은 이제 신제품 외의 제품도 매년마다 구형 제품 대신 신제품을 내놓는 방안을 내놓게 된다. 이것이 아이폰 5c의 출발이었다.
수율 문제
애초에 아이폰 5c에 대한 루머가 돌았을 때, 유일하게 확실치 않았던 것은 이 녀석의 위치였다. 과연 아이폰 4s를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5를 대체할 것인가. (이 문제는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 전에 썼던 내 이벤트 예상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5c는 5를 대체하는 제품이 되었다.
그럼 왜 5를 대체했을까? 30핀 커넥터와 3.5인치 화면을 탑재한 4s면 몰라도, 5는 대체할 이유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대도 말이다. 그 답은 수율에 있다. 5는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운 스마트폰이다. 알루미늄 유니바디와 세라믹 유리판의 이중 구조, 다이아몬드 커터로 다듬은 모서리 등은 대량 생산이 쉽지 않은 구조이다. 안 그래도 후속 모델인 5s도 5와 거의 동일한 디자인을 쓰는 상황에서 두 모델을 동시에 대량 생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그래서 애플은 아이폰 5의 내부 부품은 그대로 두고 만들기 어려운 알루미늄과 유리 케이스를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플라스틱 케이스로 변경한 것이다.
유출이 낳은 인식의 피해
이렇게 아이폰 5c는 결국 저가형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높은 사양을 갖추고 있다. 아이폰 5가 작년에 나온 스마트폰 중에서 가장 고성능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아이폰 5c는 유출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일단 5s와 따로 개발된다는 것 때문에 ‘저가형‘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다녔고, 결국 실제로는 저가형이라고 보기에 힘든데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루머 생산에 사람들에게 ‘왜 저가형이라는 놈이 가격은 왜 이리 비싸냐’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애플의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약간 불행하기도 하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과연 5c가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먹혀들 것이냐는 것. 5c의 포지션과는 별개의 문제로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엔 가격이 아직도 높은 게 아닐까 싶다. 뭐, 시간만이 결과를 말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