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doReview] 설국열차

혁명이 가져다주는 불편한 진실.

제목: 설국열차 Snowpiercer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커티스), 송강호 (남궁민수), 제이미 벨 (에드가), 존 허트 (길리엄), 틸다 스윈튼 (메이슨), 고아성 (요나), 에드 해리스 (윌포드)
상영시간: 125분

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참 좋아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실제로 괴물의 서식처라고 설정했었던 곳을 직접 가보기도 했다. (아마 원효대교 북단 아래의 복개천이었을 거다.) 그랬던 봉준호 감독이 또다시 새로운 초거대 작품을 들고 왔다. 괴물 때 110억원이라는 당시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투입했던 영화였는데, 이번 설국열차의 450억원은 또다시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돈이 들어간 영화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제이미 벨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았던 배우들이 나오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기대 끝에 공개된 설국열차, 실제로는 어떨까?

2014년, 인류는 세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대기중으로 냉각제 CW-7을 살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지구는 급격하게 얼어붙고, 이제 인류는 전세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설국열차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그로부터 17년 뒤, 설국열차 내는 열차를 개발한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절대적 1인 체제를 중심으로 계급제 사회가 되어 있었고, 춥고 배고픈 꼬리칸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반란을 일으키고, 앞의 감옥 칸에서 열차의 보안 시스템을 설계한 남궁민수(송강호)와 기차에서 태어난 그의 딸 요나(고아성)를 구출해 앞칸으로의 진격을 시작한다.

영화 직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
설국열차의 스토리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처음에 열차의 칸에 따라 나뉘어 있는 급(?)이나 커티스가 시작하는 혁명은 이러나 저러나 프랑스의 계급 사회와 그 이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많이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홍보를 위한 일종의 위장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열차 내에서 일어나는 혁명에 관한 영화 같지만, 나중에는 인류의 역사와 사회 계층의 축소판을 표현하는 모습에다가 1984와 약간의 트루먼 쇼(?!)를 섞기까지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지 대략 짐작이 가게 되는데, 문제는 이 때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다. 그 때까지 봉준호 감독은 처음을 폭발적으로 시작했다가, 약간 풀어졌다가도 다시 고삐를 잡는 식으로 강약을 잘 유지시킨다. 일부는 이러한 강약 때문에 중간이 많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지만,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시종일관 계속 폭발적으로 페이스를 유지시키기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러한 한계 내에서 봉준호 감독은 잘 해낸 것 같다. 앞칸으로 진격하는 과정이 보스를 하나 둘 처치하고 넘어가는 게임의 분위기도 풍긴다. (특히 슈퍼 마리오?) 아쉬웠던 것은 여러 부분에서 설명이 되지 않은 의문이 꽤 있었다는 것인데, 편집의 문제였던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 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9년 동안이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계속해서 보이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어느 부분인지는 스포일러이니 얘기를 안 하겠다.)

설국열차는 크리스 에반스를 다시금 보게 하는 영화가 되었다.

캐스팅에 공을 들인 영화답게 연기력은 출중한 편이다. 특히 설국열차는 크리스 에반스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실제로 그는 설국열차 촬영 도중에 어벤져스를 재촬영했다. 장면에서 그가 턱을 계속 괴고 있는 것도 설국열차 촬영 때문에 기른 수염을 숨기려고 한 것이었다.) 쾌활한 모습을 버리고 시종일관 진지하고 어두운 연기를 하는데, 이러한 새로운 모습이 처음에는 안 어울리다가도 나중에는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마녀 역을 맡아 친숙한 틸다 스윈튼 또한 영화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이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특수 분장을 하고 열차내 최강의 찌질녀 메이슨 역을 잘 해냈다.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한국식 코미디가 할리우드 배우의 연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꽤나 신기했다.

왜 이리 고아성의 샷이 많이 나오냐고 물으신다면, 지신 거다.
… 이미 지셨네 (…)

송강호와 고아성이 굳이 나와야 했냐고 하는 얘기도 많이 오간 걸로 아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중이 많이 커서 놀랐다. 특히 고아성이 맡은 요나 역의 비중이 생각보다 매우 컸던 것에 (팬으로서도) 만족하는 면도 있다. (봉준호 감독이 괴물을 만들고 나서 그의 아들이 “왜 현서(괴물에서 고아성이 맡은 역)를 죽였냐”고 물었었다고 한다. 나도 참 묻고 싶었는데.) 아무튼 이 두 사람은 괴물에 이어서 또다시 부녀 연기를 하게 됐는데, 이 둘의 케미스트리 덕분에 설국열차에서 괴물의 분위기도 많이 풍겼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엔딩은 어떻게 보면 괴물과 비슷하면서도 괴물의 그것을 뒤엎은 듯하다.) 둘이 투닥대는 모습을 보면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도 어딘가 괴물에서 강두와 현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보면 오마주랄까. 아마 이런 부분에서 일부 사람들은 이들의 비중이 억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괴물에서 이 둘의 모습이 재미있었던 난 개인적으로 좋았지만.

설국열차에서 봉준호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된다.
(위 사진은 컨셉트 아트)

봉준호 감독은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볼거리를 최대로 늘리려고 애쓴 것이 보인다. 그만큼 각각의 다른 열차 칸의 세계는 흥미롭고, 기차 자체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려 애쓴 점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괴물과 같이 초반부터 몰아치지만, 초반에 괴물이 나타나면서도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볼거리를 준 괴물과 달리, 위에 스토리 부분에서 말했다시피 ‘약’ 부분이 너무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본다. 거기에 도끼 결투 장면은 제작을 맡은 박찬욱 감독의 입김이 약간 과도하게 들어간 것 같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한국 조폭 영화의 느낌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15세 관람가라지만 실상은 한 17.5세 관람가 정도로 잡아야할 듯 싶다. (피가 날라다닌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실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하셔야 할 듯. (…)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요즘 영화들 중에서 참으로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 설국열차가 괴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싶다. 설국열차는 괴물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으로 봤을 때도 괴물만큼의 수작은 아니다. 그러나, 설국열차는 (비록 원작이 있을지언정) 흥미로운 세계관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역사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스토리,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계속되는 리부트와 만화책 원작 영화 속에서, 똑같은 만화책 원작임에도 이렇게 신선한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점수: 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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