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DC 2013 이벤트 후기

옳다고 느껴지는 것을 한다는 것.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은 스티브 잡스 사후의 애플의 행보에 대해 늘 따라붙는 질문이었다. 거짓말은 않겠다. 확실히 잡스 사후의 애플은 갈 길을 잃고 헤매는 것같아 보였다. 일단, 잡스가 생전 추진했던 프로젝트들로 첫 1년을 보냈다. 아이폰 4S와 5, 아이패드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아이패드 미니, 그리고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까지. 그러나 잡스를 이어 CEO의 자리를 이어받은 팀 쿡도 계속해서 잡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오죽하면 잡스가 생전에 그에게 “잡스라면 뭘 했을 지가 아닌, 옳다고 느끼는 것을 하라”라는 조언까지 남겼겠는가.

어차피 잡스가 CEO였을 당시에 CEO가 직접 제품 개발과정에 매우 깊이 관여하는 애플은 솔직히 말해 그다지 효율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잡스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통찰력 덕에 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잡스의 카리스마에 눌려 다른 직원들의 재능을 못 펼쳐보이는 상황도 더러 있었다. 2012년 10월의 아이패드 미니 발표 이후, 애플은 꽤나 긴 신제품 암흑기에 돌입했다. 애플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어갔다. 특히, 잡스가 싸질러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삼성과의 특허전은 고지쟁탈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애플은 매출면에서는 계속해서 성장했지만, 예전만큼의 성장세를 보이지 않았고, 700달러를 찍전 주가는 40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쿡은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애플의 행보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3년 세계개발자회의(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2013: WWDC 2013)는 좋은 기회였다.

iOS 7: iOS 역사상 가장 큰 도전

iOS 7은 그동안의 행보에 완전히 리셋을 걸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Apple)

사실 iOS 7은 신기능이 꽤 많은 업데이트다. 와이파이, 미디어 조종 등의 기능을 어디서든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제어 센터, 지원을 강화하고 더 똑똑해진 멀티태스킹, 무선 네트워크에 연결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지인에게 파일을 바로 보낼 수 있는 에어드랍 등. 하지만, iOS 7의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은 단연 최대화제가 되었다.

iOS 7은 팀 쿡이 소개한대로 “아이폰 출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iOS 업데이트”다. 그만큼 애플로서는 큰 도전이기도 하다. 원래 iOS를 이끌던 수장이자 잡스와 함께 실제 물체를 디지털로 옮긴 스큐어모프를 지지했던 스콧 포스털을 쫓아내고, 지금의 애플이 있게 한 하드웨어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를 iOS 7의 새로운 디자인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 지난 12월. iOS 7을 발표해야 하는 6월까지는 단 6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간적 제약 대문에 항간에는 새로운 OS X을 개발하던 임시로 iOS 7 개발팀에 배정시켰다”라던가, “디자인 변화 폭이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정작 공개된 iOS 7은 보던 사람들을 모두 순간 당황시킬 정도의 변화를 거쳤다. 거의 안 건드린 부분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러다보니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커뮤니티에서는 iOS 7의 디자인을 놓고 끝없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은 따로 다른 포스트에 써놨으니 굳이 다시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확실히 iOS 7은 지금까지의 iOS의 행보에 완전한 리셋을 걸었다. 언젠가는 필요한 것이었다. iOS가 점점 묵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명했고, 잡스는 계속해서 그러한 리셋을 거부해왔다. 기존 사용자층의 반발을 우려해서였다. 누군가는 해야할 리셋이었고, 이를 쿡과 아이브가 나서서 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옳은 것이었다. 이 리셋을 기반으로 iOS는 더욱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Mac Pro: 프로 데스크톱의 새로운 방향

새로운 맥 프로를 통해 애플은 외장 확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출처: Apple)

신형 맥 프로는 iOS 7에 가린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무엇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 상관을 안 한다. 있는 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해외 커뮤니티들을 살짝 들여다보면 확실히 맥 프로의 새로운 모습은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맥 프로는 옛날 파워맥 G4 큐브가 (알루미늄) 칼을 갈아서 돌아온 것만 같다. 2000년에 선보인 이 컴퓨터는 모든 부품을 작은 정육면체에 모두 밀어넣은 신개념의 제품이었다. 그러나 확장성의 결여와 엄청난 발열(하도 부품들이 붙어있는 데다가, 명색이 파워맥이라는 놈이 팬이 없었다!)때문에 큐브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단종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13년 뒤 등장한 이 신형 맥 프로는 그 당시의 큐브와 상당히 유사하다. 외계인 고문 수준의 상당한 집적도를 자랑하는 내부 구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컴퓨터의 잠재적 구매 그룹인 전문가들이 가장 반발할 내부를 확장할 방법이 최대 128GB까지 확장이 가능한 메모리와 스토리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구형 맥 프로는 4개의 드라이브 베이, 메모리 슬롯 8개, 그리고 그래픽 카드까지 자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다. 외장 인터페이스라고는 파이어와이어와 USB 1이 전부였던 큐브와 달리, 13년 후에 등장한 맥 프로는 USB 3 포트 4개, 썬더볼트 2 6개, 802.11ac 무선 네트워크 등 외장 확장을 위한 최신 인터페이스를 전부 집어넣었다. 당장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꽂으면 USB 3의 속도만으로도 충분히 하드 드라이브의 최고 속도를 뽑을 수 있고, 최고 20Gbps의 전송 속도를 자랑하는 썬더볼트 2 또한 새로운 맥 프로의 확장성을 책임질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각형 모양의 알루미늄으로 만든 열처리 코어 위에 부품들을 배치하고, 위에는 하나의 거대한 팬을 달아 냉각을 책임지도록 했다.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처럼 비대칭 구조로 설계되어 팬 소리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 하스웰 기반의 12코어짜리 최신 제온 프로세서를 장착할 수 있고, AMD 파이어프로 6GB 그래픽 카드를 최대 두 개까지 꽂을 수 있다. 내부적 확장이 안되는 컴퓨터로서는 최고의 사양인 셈이다. 아, 그리고 원통 모양의 외부 케이스?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을 낸 알루미늄이다.

애플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소비자들은 실제로 제품이 나올 때까지 자신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맥 프로는 이러한 애플의 DNA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애플은 전문가들에게 “이게 이제 너희들이 쓸 컴퓨터야”라며 프로 컴퓨터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했다. 물론 그 모습이 내장 확장에 익숙한 전문가들이 반발할 것이고, 장비들을 바꾸느라 상당한 비용이 들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용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애플은 알고 있다. 또한, 그와 동시에 맥 프로 자체를 좀 더 쉽게 만듦으로서 전문가 이외에도 다른 사용자층에게도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부분도 있다. 요즘 자동차 산업에서 대세인 크기와 부담은 줄이고, 성능은 높이는 다운사이징의 표본인 셈이다. 기존 맥 프로를 쓰던 전문가들은 반발할 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기존 맥 프로가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맥북 프로나 아이맥을 쓰던 전문가들은 좀 더 친근하게 새로운 맥 프로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격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더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이전에 애플의 광고를 담당했던 켄 시걸은 새 맥 프로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애플은 프로 사용자들을 잊지 않았다. 프로 사용자라는 말을 재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OS X Mavericks: 성형이 아닌 내부 개조.

OS X 매버릭에서 애플은 스노우 레퍼드가 그랬던 것처럼 기능 추가는 줄이고 성능 최적화에 중점을 뒀다.
(출처: Apple)

OS X 라이언부터 OS X 또한 iOS처럼 개발 사이클을 1년으로 줄이면서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두 번의 “사자” 업데이트는 OS X에 많은 iOS 기능들을 더했고, 아이클라우드와의 동기화를 더 강화해 iOS 기기들과의 연계성 또한 높였다.

올해 공개된 OS X 매버릭은 어떻게 보면 4년 전 스노우 레퍼드 같다. 신기능 면에서는 예전 업데이트에 비해 많지 않지만, 그만큼 내부 성능에 상당한 개조를 가했다. 비활성 메모리를 반으로 압축시켜 가용 메모리를 늘리는 메모리 압축, 뒤에 있는 앱은 최대한 CPU 사용량을 줄여 앞에 있는 앱의 성능을 개선시키는 앱 냅, 그리고 프로그램 타이머를 조정해 CPU가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타이머 병합 등을 통해 CPU의 효율적 사용과 이를 통해 배터리 사용 시간의 증대를 가져왔다.

신기능을 아주 무시한 것도 아니다. 라이언에서 미션 컨트롤과 전체 화면 도입 이후로 계속해서 문제가 됐던 다중 화면 문제를 해결했고, 파인더에 탭 기능을 드디어 추가했다. 애플 지도와 아이북스가 맥으로 포팅되었고, 사파리 또한 성능을 훨씬 개선한 7 버전으로 올렸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라는 말이 있다. 고양잇과 동물에서 이름을 따오느라 개발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는 농담이다) 캘리포니아의 서핑 명소에서 이름을 딴 매버릭은 이러한 숨고르기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iOS 7보다 매버릭이 더 기대가 된다. 이전 버전에서 성능을 개선한 스노우 레퍼드는 OS X 버전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버전으로 유명했다. 과연 매버릭은 그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MacBook Air: 하루종일 충전기 없는 삶을

신형 맥북 에어는 칩셋의 변화만으로 배터리 시간을 거의 두 배 증가시켰다.
(출처: Apple)

옛날에 크롬북을 리뷰하면서, 나는 충전기 없이 크롬북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때는 이미 3년이 지난 배터리 시간이 3시간을 가면 다행인 맥북 프로를 쓰고 있었을 당시였다. 그 다음 메인 머신으로 영입한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그 고성능에 5시간을 쓰고도 30% 가량의 배터리를 남길 정도의 배터리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세상이 발전한 거랄까.

이번 WWDC에서 발표된 신형 맥북 에어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인텔의 4세대 코어 프로세서, 코드네임 “하스웰”을 탑재한 신형 맥북 에어는 그 하나의 차이점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 외에 802.11ac 무선 네트워킹과 듀얼 마이크, 더 빠른 플래시 스토리지 등이 있다.)

인텔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하스웰은 기존 아이비브릿지에 비해 프로세서의 전력 효율을 50% 정도 늘였다고 한다. 그만큼 배터리의 전력을 덜 소비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애플은 에어 자체의 배터리 크기를 좀 더 키우고, OS X의 전력 절약 기술을 통해 11인치 9시간, 13인치 12시간이라는 아이패드를 뛰어넘는 배터리 시간을 선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외신들의 실험 결과가 애플 측 자료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일부 실험에서는 13인치 모델이 13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여기에 전력 효율을 더욱 더 높인 매버릭을 설치한다면? 이젠 넘사벽이 될 기세다.

이제야 맥북 에어가 아이패드의 배터리 시간에, 맥의 생산성을 합친 제품이 된 듯한 느낌이다. 아이패드로 일을 하다보면 답답한 때도 있을텐데, 맥북 에어가 그런 시나리오에 대한 좋은 대체제가 될 것 같다.

옳다고 느껴지는 것

만약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한다면,
누가 어떤 것이라도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편리함과 즐거움을 혼동하기 시작합니다.
넘침을 선택으로 혼동하기 시작하지요.
무언가를 설계하는데에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처음 우리는 자신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 라고 묻습니다.
기쁨, 놀라움, 사랑, 연결.
그러고 나서야 그 의도에 맞춰서 설계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립니다…
모든 “예”에는 천 개의 “아니오”가 붙습니다.
우리는 단순화시킵니다. 완벽하게 만듭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가 손댄 모든 생각이 그것을 사용하는 각각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때까지.
그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작품에 각인을 합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애플은 지금까지 잡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왔던 기업이다. 하지만, 이제 잡스는 가고 없고, 쿡은 잡스가 아니다. 이제 잡스와는 또다른 리더십으로 애플을 이끌어야 한다. WWDC 2013은 예년보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풍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쿡의 지휘 아래에 있을 애플의 미래를 미리 보여줬다는 것이다.

쿡 체제 아래의 애플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협업이다. 따로따로 놀던 iOS 팀과 OS X 팀을 크레이그 페데리기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으로 통합시켰고, 하드웨어 디자인만 담당하던 조니 아이브는 이제 회사내의 모든 디자인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제 소프투에어 엔지니어링을 한 팀이 맡게 되었으니 이제 OS간 협업의 강화와 함께 연계성이 더 강화될 것이고, 아이브가 하드웨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이제 소프트웨어 디자인도 맡게 되었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적 조화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

물론 애플도 아직 이러한 새로운 체계를 실험중이다. iOS 7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디자인과 OS X 매버릭의 급한대로 스큐어모프만 열심히 걷은 듯한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페데리기와 아이브도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힘든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도치고는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생각한다. 잡스 사후 2년, 이제야 팀 쿡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애플의 새로운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더 흥미롭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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