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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doReview] 데스티니

야망은 컸다. 그러나…

2010년의 헤일로: 리치를 마지막으로, 헤일로 프랜차이즈를 개발한 번지는 헤일로의 지적 재산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기고 쿨하게 떠났다. (2012년에 발매된 헤일로 4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헤일로 시리즈 개발을 위해 만든 343 인더스트리의 작품이다.) 이후 번지는 콜 오브 듀티를 배급하는 액티비전과 10년짜리 배급 계약을 맺고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개발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 달에 나온 데스티니다.

요즘같이 계속해서 속편 혹은 프리퀄이 나오는 상황에서 데스티니는 신선했다. 새로운 설정, 새로운 이야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옛날 것을 많이 짬뽕한) 장르까지. 액티비전도 엄청난 지원을 약속했고, 엄청난 양의 마케팅을 해댔다. 옛날 헤일로 시절이 생각났을 정도였다. 과연 데스티니는 이 기대에 부응하는 게임일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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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마지막 도시를 수호하는 여행자.

먼 미래에, 여행자라 불리는 정체 불명의 신비한 존재가 나타나 인류의 기술에 엄청난 진전을 가져온다. 인류는 이를 통해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들을 테라포밍하고, 식민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여행자에게는 어둠이라는 적이 있었고, 이 어둠은 인류를 침공해 대부분의 식민지와 지구의 대부분을 말살시킨다. 여행자는 최후에 자신의 희생으로 어둠을 막는 데 성공하고, 지구에 인류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도시를 만들어 거기에 보호막을 치고 보호해준다. 주인공은 가디언으로, 인류와 어둠의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들을 여행자의 힘으로 환생한 존재다.

데스티니의 이러한 설정은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헤일로라는 아직도 확장하고 있는 멋진 세계관을 만든 사람들이니까! 문제는… 저게 끝이다. 설정은 참으로 멋진데, 거기서 이어지는 스토리 미션들은 스토리 요소들이 너무 느슨하다. 게임을 하고 나서 “내가 대체 뭘 했지”라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으면 이미 그 게임의 스토리는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된다.

사실, 데스티니의 스토리는 엉망진창이 아니다. 그냥 없다. 주인공인 가디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셔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플레이어들은 그 셔틀이 외계인 적들을 쏴죽이는 걸 도우면 된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헤일로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이런 스토리적 망작을 뽑았다는 사실에 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왕좌의 게임과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친숙한 피터 딘클리지가 가디언을 보좌하는 고스트의 목소리를 맡긴 했지만, 헤일로 시리즈의 코타나와 비교해서 너무 기계적으로 들려서 중간중간 나오는 유머가 어색할 정도다. 이는 비단 딘클리지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각본이 개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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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을 보좌하는 고스트(왼쪽) 역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도 각본을 살리지는 못 했다.

게임플레이

번지는 데스티니를 통해 상당히 많은 컨텐츠를 넣으려 했음이 보인다. 스토리 미션은 클리어하는 데 15시간 정도 걸렸고, 그 이후에도 스트라이크 미션과 PvP 형식의 크루시블 등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그러나 번지가 얘기하는 “10년동안 할 수 있는 게임” 정도의 컨텐츠냐? 그건 아니다.

일단, 게임플레이가 지나치게 반복적이다. 데스티니의 레벨 디자인은 헤일로의 그것만큼 치밀하지가 못하다. 어딘가에 적 무리가 나타나고, 이들과 싸운다. 다 처리했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생기기도 한다. (위 영상 보시면 무슨 말인 지 아실 거다.) 적의 AI도 치밀한 코버넌트의 AI보다는 디아블로의 잡몹 수준이다. 특별히 전술이라는 건 필요없다. 죽을 때까지 쏴갈기면 된다. 보스도 패턴보다는 대체 닳지 않는 체력과 잠깐 멍때리면 바로 관광보낼 수 있는 한 가지 공격으로 승부한다. (특히 스트라이크 미션이 더더욱 그렇다.) 사실 레벨 디자인이 너무 RPG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레벨 디자인이 FPS에 접목되면 몰입감이 확 떨어진다는 것.

데스티니의 멀티플레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협동과 PvP인 크루시블. 스토리 미션은 혼자 플레이할 수 있지만, 일반 스토리보다 더 어려운 보스전이 기다리고 있는 스트라이크 미션은 무조건 세 명의 팀을 이루어 해야한다. 이 팀은 자신의 친구들이 될 수도 있고, 매치메이킹을 통해 할 수도 있다. 문제는 PvP인 크루시블에 매치메이킹이 없다. 이러다보니 우리는 레벨이 이제 막 15인데 적은 22-23이어서 일방적으로 제압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미션같은 경우 종류가 너무 적다. 각각의 행성마다 보통은 하나, 많으면 둘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나중에 밴가드 플레이리스트라고 하는, 레벨 20 이상이 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여기서 스트라이크 플레이리스트를 하다보면 같은 미션을 두 번, 많으면 세 번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안 그래도 보스전이 힘든 스트라이크 미션인데, 피로감이 너무 쉽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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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의 캐릭터 정보 화면.

데스티니의 가디언은 경험치로는 최대 20, 그 이후로는 방어구 아이템에 있는 빛 수치를 통해 최대 30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이러한 개인화 기능은 마음에 든다만, RPG라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조금 빈약한 건 사실이다. 난 아무렴 좋다. 이런 거 때문에 머리아픈 건 딱 질색이라. 문제는 20 이후로 레벨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나중에야 밴가드 랭크라는 게 올라가면 빛을 많이 주는 아이템을 살 수 있다지만, 그 이전까지는 드랍되는 아이템에 의존해서 올려야 하는데, 드랍율이 말도 안 될 정도도 낮다. 거의 초창기 디아블로 3 수준이다. 아예 이렇게 레벨과 아이템을 묶어놓아서 아이템을 뒤지러 게임을 하는 것을 노린 듯한데, 그러기에는 드랍율이 너무 낮아서 중간에 게임을 포기할 가능성도 보인다. (나도 만약에 다른 PS4 게임이 없었으면 때려칠 뻔했다.)

데스티니의 게임플레이에서 그나마 정말 좋게 평가해줄 수 있는 것은 FPS적 면모다. 데스티니의 타격감은 그야말로 최고다. 각 무기의 특성과 수치도 너무나도 잘 반영된다. 번지가 자신이 잘 하는 것 하나는 매우 잘 살려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것마저 실망스러웠다면 아마 데스티니를 오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프리젠테이션

데스티니의 스토리 작가들이 휴가를 간 동안, 아티스트들은 야근을 여러 번 한 듯하다. 데스티니의 프리젠테이션은 차세대기임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인상에 남는다. 방문하는 곳마다 확연히 다른 비주얼은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타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때도 꽤 많았다. 게임 자체의 성능도 매우 좋은 편이다. 버벅이지 않고, 꾸준한 프레임 속도로 이러한 비주얼을 뽑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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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번지의 베테랑인 마틴 오도넬이 작곡한 음악은 (비록 스토리는 그렇지 못하지만) 데스티니의 웅장한 분위기에 퍽 맞는다. 불행히도 오도넬이 데스티니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번지에서 해고당해 앞으로 그의 음악을 번지 게임에서 들을 수 없다는 건 상당히 아쉽다. (그 여파 때문인 지 사운드트랙도 나오지 않았다.) 폴 매카트니가 돈 안 받고 만들었다는 노래? 그건… 논외로 하자.

결론

여러모로, 데스티니는 올해의 게임상을 모두 털어가는 명작이 될 수 있었다. 만든 사람들이 명작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자본도 충분하다못해 넘쳤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결과물은 그 기나긴 개발 기간과 자금이 대체 어디에 쓰였는 지 약간의 의문이 드는 게임이 됐다. 번지가 그리도 강했던 부분들이 데스티니에서는 전혀 발휘가 되지 않은 점은 대체 번지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할 정도다.

그러나 번지는 헤일로처럼 1편부터 명작을 만들 지는 못 했더라도, 데스티니를 통해 하나의 또다른 성공적인 IP를 만들 수 있는 길을 닦은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이렇게 욕을 하면서도, 계속 하게 만들고 있거든.

데스티니 Destiny

개발사: 번지 스튜디오
배급사: 액티비전
출시일: 2014년 9월 9일 (북미) / 10월 16일 (한국)
플랫폼: PS3, XBOX 360, PS4, XBOX ONE

장점

  • 미려한 비주얼
  • 웅장한 음악
  • FPS를 잘 아는 사람들다운 타격감

단점

  • 번지답지 않은 매우 느슨한 스토리
  • 번지답지 않은 매우 반복적인 게임플레이
  • 레벨 진행의 밸런스 붕괴

 점수: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