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PC를 대체해야 하나?
애플은 ‘포스트-PC’ 시대의 선봉장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밀고 있다. 이 중 아이폰은 애플 매출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엄청나게 팔려나가지만, 아이패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년 가까이의 기간 동안 한 번도 판매량이 늘어난 적이 없이 계속해서 전년 대비 하락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패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2015년에 내놓은 아이패드 프로가 좋은 예였는데, 애플 펜슬과 스마트 키보드라는 대놓고 “일을 하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듯한 공식 액세서리와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을 가졌지만, 결국 소프트웨어의 한계와 인식 변화의 실패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 했다. 나도 결국 밖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이 더 낫겠다는 판단에 맥북을 두 대나 운용하고 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애플이 2세대를 내놓으며 다시 “아이패드는 노트북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도전한다. 과연 나부터 이 인식을 바꾸게 할 수 있을까?
디자인
디스플레이
프로모션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바로 주사율 120Hz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보통 노트북이나 모니터, 모바일 기기에는 60Hz짜리 디스플레이가 탑재됐었는데, 이 말은 디스플레이가 1초에 60번 새로운 영상 신호를 보낸다는 이야기다. 프로모션 디스플레이는 기존 디스플레이의 두 배로 속도로 영상 신호를 보낸다. 그 덕분에 iOS를 조작할 때 매우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패드를 쓰다가 아이폰 화면을 쓰면 잔상이 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은근히 신경 쓰일 정도다. 이 차이는 영상으로도 표현하기 힘들고, 직접 만져봐야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계속해서 120Hz의 속도로 신호를 계속 새로 보내면 전력 소모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큰 화면이 들어가는 아이패드는 더더욱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플이 프로모션 기술에 도입한 것이 바로 가변 주사율이다. 상황에 따라 신호를 보내는 횟수를 다르게 해 배터리를 절약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iOS의 UI 요소를 조작할 때는 120Hz의 주사율을 유지하지만, 영상을 재생하면 해당 영상의 프레임 속도에 맞춰 주사율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책이나 웹페이지 등을 읽을 때 화면이 정지 상태가 되면 주사율을 24Hz까지 낮춘다. (초당 24 프레임은 일반적인 영화의 프레임 속도라 여기에 맞춘 듯하다) 이러한 가변 주사율은 화면 전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부분에만 적용될 수도 있어서, 만약에 PIP(픽처 인 픽처) 모드로 동영상을 작게 띄워뒀다면, 그 부분만 주사율을 조정하기도 한다.
애플은 프로모션의 개발에만 3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맥 프로에 120Hz를 구현할 수 있는 특수 버전의 iOS를 얹은 다음, 프로토타입 터치 스크린에 연결해 기술을 시험했다는 후문) 이미 주사율을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능은 전세대 아이패드에도 들어간 기능이지만, 120Hz의 주사율은 프로모션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구성 요소가 됐다. 디스플레이 패널 자체의 기술도 있지만, 120Hz를 지원하기 위한 그래픽 칩이나 iOS의 소프트웨어 지원 등이 어우러진 덕분에 여태까지 본 모바일 디스플레이 중 가장 앞선 기술의 디스플레이라는 칭호를 줄 만하다.
성능
위에서 이야기한 프로모션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애플은 새로운 칩셋이 필요했다. 기존의 A 시리즈 모바일 시스템-온-칩(SoC)에 들어간 그래픽 칩셋만으로는 120Hz의 주사율을 안정적으로 뿌릴 수가 없기 때문. 그래서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 새롭게 들어가는 SoC가 바로 A10X 퓨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A10X는 아이폰 7에 들어간 A10 퓨전을 개량한 물건이다. 애플은 배터리도 훨씬 크고, 큰 크기 덕분에 발열 문제에서 자유로운 아이패드에는 클럭 주파수를 올리거나 더 강력한 그래픽 칩셋을 얹은 X 버전을 사용하곤 한다. X 버전의 시초인 A5X도 A5를 기반으로 당시에 아이패드에 처음으로 들어간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그래픽 칩셋의 코어를 두 개 추가시킨 물건이었다.
액세서리
2015년에 발매된 첫 번째 아이패드 프로는 그동안 아이패드에서는 보지 못 했던 두 개의 공식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바로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 펜슬이다. 두 가지 모두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벗어난다며 말이 많았었던 액세서리지만, 지금은 아이패드 프로를 다른 아이패드 라인업과 구분 짓는 요소가 됐다.
정말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는가?
내가 원래 바깥에서 쓰는 휴대용 컴퓨터는 2016년형 13인치 맥북 프로, 아니면 2015년형 맥북이다. 예전에 아이패드를 휴대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iOS의 한계 때문에 결국 작은 맥 노트북을 구매해 사용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히 대체는 못 한다. 사실 이 실험을 시작하기 전부터 답은 뻔하다는 걸 알았다. 일단 모든 원고를 아이클라우드로 동기화해주는 율리시스를 쓰는 덕에 글을 쓰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문제는 백투더맥이 기반하고 있는 티스토리인데, 이미지 업로더에 이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플래시를 아직도 쓰는 놀라운 집단인 덕분에 이미지를 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앱은 쓰레기였다 결국 기사를 밖에서 쓰고, 올리는 것은 집에 들어와서 마무리지어야 했다. (모바일 앱 지원이 확실한 브런치를 썼더라면 올리는 것까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보정하려고 해도, iOS용 라이트룸은 macOS용에 비해 기능이 한참 떨어져서 내가 자주 쓰는 사진 보정 제어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아이패드에서 쓰는 iOS 11은 이 큰 화면을 어떻게 활용할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 느낌이다. macOS에서 거의 그대로 빌려왔지만 아이패드에 알맞게 기능을 추가한 독부터, 이제는 두 개의 앱을 하나의 스페이스로 구분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스위처, 앱 사이에 파일이나 단락 이동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드래그 앤 드롭,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드롭박스나 구글 드라이브 등의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한 앱에서 통일해 볼 수 있는 파일 앱 등의 기능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했던 것에서 아이패드의 사용성을 크게 바꿔 놓았다. 여기에 넉넉한 성능의 A10X와 맞물리니 베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날아다녔다. 물론 아직 베타이고, 나중에 기능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아직 써드 파티 앱들이 iOS 11의 새로운 AP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어서 (특히 드래그 앤 드롭은 개발자들이 따로 지원을 넣어야 한다) 아직 iOS 11에 대한 최종 판단은 하기도 어렵고, 해서도 안 된다. 이 부분은 iOS 11의 최종 버전이 나오는 시점에 할 것이지만, 일단 현 상태에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대체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싸움을 보면서 내가 든 의문은 하나다. “꼭 아이패드가 노트북을 대체해야 할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가 막 출시됐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우리가 농업국가였을 때, 모든 차들은 트럭이었습니다. 농장에서는 트럭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도시에서 차량들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일반 차들이 더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PC는 트럭 같이 될 겁니다. 여전히 있고, 여전히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X명의 사람들 중에 한 명만이 사용하겠죠.”
잡스의 비유대로 일반 자동차와 트럭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여전히 트럭(혹은 버스)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으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 트럭은 계속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SUV나 승용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 두 가지 차는 트럭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SUV나 승용차가 제공하는 이점 (좌석이 더 많다던가, 승차감이 더 좋다던가) 때문에 이들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비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해보면, “트럭과 SUV는 완전히 다르잖아?”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는 픽업 트럭이라는 물건이 있다)
아이패드 프로와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포함한 일반 PC의 관계도 똑같다. 물론 일반 PC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직종 중에는 PC가 제공하는 기능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자라던가) 이들에게 아이패드를 대체제라면서 강요하는 것은 트럭 운전사들에게 SUV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미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이패드가 제공하는 것이 충분할 것이다. 오히려 위에 쓴 훨씬 오래가는 배터리와 셀룰러 연결, 상황에 따라 액세서리를 조합할 수 있는 유연성 등은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휴대하면서 사용하기에는 훨씬 유리하다.
“아이패드(프로)가 PC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런 이유로 사실상 의미가 없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하자면, “아이패드 프로가 잠재적인 노트북 구매자들에게 ‘내가 굳이 노트북까지 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대신 고를 만한 메리트를 제공할 것인가?”일 것이다.
이 질문에 지금 현재 시점에서 대답을 하자면, 아직은 아니다. 이는 아이패드가 부족한 부분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탓도 크다. 우리는 지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고, PC에서 사용할 만한 앱들의 인터페이스도 여기에 맞춰져 왔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스마트폰에서 늘인 것 같은 큰 터치 스크린을 던져 놓으면, 당연히 괴리감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고, 이런 면에서 애플의 제안은 애플 입장에서도, 개발자들도,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최소한 애플 입장에서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iOS 11의 모습은 물론 macOS에서 많이 빌려왔더라도, 정확히 이 사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좀 더 익숙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 큰 터치 스크린에서도 충분히 PC에서 하던 일 중 일부는 할 수 있다는 선언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은, 과연 나머지가 따라올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여기에 애플이 지금까지 해온 아이패드 실험의 성패가 달려 있다.
* 리뷰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신 루카스초이스 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 지난 1세대 버전 리뷰에 이어 또다시 애플 펜슬 실험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전에서 먼길 올라온 주뉼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