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와 iOS. 둘은 비슷한 점도 많지만, 플랫폼을 어떻게 접근하는가의 문제에는 매우 다른 자세를 취했다. iOS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 따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통제했다. 잡스는 1997년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맥OS를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곧바로 접었고, 그 뒤로 맥 하드웨어는 애플만이 제조하고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iOS 하드웨어(아이폰, 아이패드)도 애플만이 만들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하할 때 자신이 만든 앱 외에 다른 앱을 탑재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이 문제 때문에 1세대 아이폰을 출시할 때 난항이 많았다는 점은 잘 알려진 일화다. 애플은 이점을 늘 자랑스러워하며 매번 이벤트를 벌일 때마다 강조했다.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라며.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이와 정반대였다. 먼 옛날인 2008년,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발표하면서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라는 것을 출범했다. 다양한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폰을 개발하고, 통신사들이 쉽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튜닝(나쁜 말로는 통신사 앱을 선탑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단체였다. 구글은 첫 안드로이드폰을 HTC와 공동 제조해 내놨고, 레퍼런스 기기인 넥서스 시리즈도 하드웨어 파트너와 같이 만들었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 오픈소스와 협력이라는 정책은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을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혹자는 80년대의 PC 전쟁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4일(현지 시각) 발표한 구글의 픽셀 스마트폰은 이 접근과 정반대다. 구글이 하드웨어까지 직접 개발했고, HTC가 위탁생산을 하지만 구글은 이벤트에서 HTC의 H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7.1 누가를 기반으로 구글 어시스턴트가 내장된 전용 런처인 픽셀 런처를 사용하고, 구글이 직접 개발한 가상현실 플랫폼인 ‘데이드림’ 플랫폼을 처음으로 적용하기도 했다.
이 날 이벤트의 이름은 “Made by Google”, 즉 구글이 직접 만든 하드웨어를 소개하는 이벤트였다.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와 다른 하드웨어 파트너와의 협업을 강조하던 지난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글은 하드웨어 사업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 하드웨어 사업부를 이끄는 릭 오스터로(Rick Osterloh)는 픽셀을 소개하면서 “다음 큰 혁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교차점에서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애플이 매 이벤트마다 하던 말과 비슷하다. CEO인 순다 피차이는 구글이 인공지능 우선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글의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한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통제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직접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것이 안드로이드를 늘 괴롭히는 파편화 문제를 직접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구글이 이미 있는 수많은 안드로이드 기기 제조사들(삼성이라던가)을 바로 버릴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기도 힘들 거다. 하지만 구글은 직접 제조하는 픽셀에 단순히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를 우선으로 받는다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을 줬다. 그게 픽셀 런처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능이거나, 하다못해 원본 사이즈로 구글 포토에 무제한 업로드를 할 수 있는 특혜일 수도 있다. “구글이 원하는 안드로이드”를 경험하려면, 픽셀을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넥서스가 어디까지나 구글의 사이드 프로젝트였다면, 이번엔 진지하다.
미국 시각으로 내일(5일)은 스티브 잡스의 사망 5주기다. 그런데 그 전날의 그의 철학을 차용한 제품을 구글이 발표했다. 구글의 이벤트는 예상외의 곳에서 튀어나온 잡스에 대한 추도사였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