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손목시계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내 티쏘 PRC-200 손목시계의 배터리가 죽었다. 작년 8월에 샀으니 그랬을 만도 하다. 그런데 마침 우리집에 모토 360이 도착했다. 내 건 아니고, 누가 나를 통해서 배송받기 위해 주문을 여기로 한 것이다. 즉, 배송대행이다. 게다가 주인은 한 번 써보라고도 했겠다, 나는 모토 360의 박스를 뜯어보았다.
그러나 독자분들이 아시다시피, 나는 골수 아이폰 사용자다. 서브 기기로 넥서스 폰 하나를 들여올까란 생각은 늘 했었지만 늘 재정상의 이유로, 그리고 몇 년 전에 폰 두 대를 들고 다니면서 골치아픈 경험을 겪었기에 그러지는 못했다. 그리고 모토 360은 안드로이드폰하고만 연결되는 안드로이드 웨어 기기다. 이 어색한 공존은 과연 가능할까?
셋업
막 뜯은 모토 360에 전원을 넣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첫 단계부터 난관이다. “휴대전화에 Android Wear를 설치하세요.” 물론, 안드로이드 웨어 기기와 스마트폰을 연동시켜주는 이 앱은 iOS 앱 스토어에는 없다. 무조건 안드로이드폰이 필요하다. 룸메이트의 갤럭시 탭을 빌려보려 한다. 버전이 4.2.1이다. 안드로이드 웨어 앱은 4.3부터 지원한다. 플레이 스토어에 검색 결과도 안 뜬다. 그날 마침 다른 친구가 우리집으로 오기로 했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본다.
쿠도: “네 폰(갤럭시 S4) 안드로이드 버전 얼마냐?”
친구: “나? (뒤져본다) 4.4.2.”
쿠도: “오 굳… 나 잠깐 폰 좀 빌려도 돼?”
그동안 나는 26%밖에 없는 (설치하라는 화면에 배터리 잔량을 표시해준다. 세심해라) 360의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박스 구성품 중에 있는 무선 충전 독을 꺼낸다. 다행히도 독의 끝은 마이크로 USB다. 충전기는 뜯지 않고 독만 뜯어 내 앵커 USB 충전기에 남아도는 마이크로 USB 케이블과 연결하고, 독 위에 360을 살짝 올려놓으니 충전을 시작한다. 충전 속도는 꽤 빠르다. 320mAh(iFixit에서 뜯어본 결과는 더 작았다지만, 일단 그렇다 하자)의 배터리를 40W짜리로 충전하니 당연한 건가. 친구가 도착할 때쯤에 이미 충전은 완료되어 있다. 친구의 갤럭시 S4를 빌려 빠르게 안드로이드 웨어 앱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기본적 셋업을 완료한 후, 친구의 폰에서 앱을 지워서 돌려줬다. 이로서 기본적으로 시계로 쓸 준비는 완료되었다.
디자인
모토 360이 엄청난 화제를 뿌리고 다닌 것은 디자인 덕분이었다. LG의 G 워치와 함께 공개된 360은 실제 손목시계를 닮은 둥근 디자인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덕분에 같이 공개된 LG G 워치는 그냥 버로우. 결국 LG는 급하게 둥근 화면의 R을 이번에 내놓았다.)
모토 360의 둥근 디자인은 확실히 이 시계의 진짜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360을 차고 돌아다닐 때, 거의 아무도 처음에는 360이 여타 시계와 다른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일부 사람들만이 시계가 보통 때는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 것을 보고 이게 스마트워치라는 걸 알아챘다.
모토 360은 생각보다 컸다. 내 티쏘 시계보다도 지름이 크다. 화면도 화면이지만 보드를 어떻게든 우겨넣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래도 내 얇은 손목에는 꽉 매지 않으면 약간 들린다. 360의 화면 자체는 완전한 원형이 아닌 아래에 작은 베젤이 있는 형태인데, 모토로라는 베젤을 두껍게 하고 완전한 원형 화면을 택하느냐, 아니면 베젤을 완전히 얇게 하고 원형 화면을 포기하느냐의 고민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보기엔 잘한 결정같다. 얇은 베젤이 정말 보기 좋거든. 그리고, 생각보다 무게도 상당히 가볍다.
화면은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205PPI짜리 LCD인데, 시간을 보려고 유심히 보면 화소가 보인다. 그리고 색재현율이나 주광 시야도 요즘 패널(특히 요즘 메인 스마트폰으로 쓰는 아이폰 6)에 비하면 조금 뒤쳐진다. 커버 유리의 가장자리는 굴절 때문에 화질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정도 디자인의 하드웨어를 249달러로 내놓아준 것에 대한 약간의 희생으로 판단해야 할까. 그리고 360은 안드로이드 웨어 스마트워치 중 유일하게 조도 센서가 탑재되어 주변 광량에 따른 자동 밝기 조절이 가능하다. 이 센서는 화면 컨트롤러와 함께 아까 말한 아래의 작은 베젤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나오는 모토 360은 가죽 시계줄이 기본으로 묶여서 나오는데, 360의 바디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다소 떨어뜨린다. 매우 값싼 가죽이거나, 가공을 매우 저렴하게 한 기분이다. 안쪽에는 극세사 처리를 해놓아 손목과 닿는 부분은 느낌이 좋지만, 겉에 있는 가죽은 처음에 매우 뻣뻣해서 처음에는 손목에 차기가 힘들 정도다. 하루이틀 정도 지나면 무슨 군화처럼 연화가 되어 유연해진다. 곧 메탈 시계줄도 나온다 하니, 그건 좀 기대해볼 만할 것 같다.
사용
모토 360의 화면을 깨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모션 센서를 통해 깨우는 방법인데, 늘 먹히지는 않는다. 특정 동작을 통해서만 화면이 자동으로 켜지는 것 같은데, 아직도 동작이 어떤 종류인 지는 헷갈린다. 어떨 때는 원할 때 화면이 안 켜지고, 어떨 때는 원하지 않을 때 화면이 켜지기도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옆의 크라운을 누르거나, 화면을 탭하면 된다. 화면을 탭하는 방법은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다. 특히 잘못된 터치로 시계가 지 혼자 화면이 켜진 적도 이따금씩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일단 화면이 켜지면 시계가 제일 먼저 반긴다. 모토로라는 다양한 시계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연동 앱을 통해 색깔 등을 바꾸고, 더 많은 디자인을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건 시험해보진 못 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시계도 같이 띄워주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데, 시계 자체에서 서울을 설정하는 게 불가능해서 포기하고 썼다. (역시 앱에서 바꿀 수 있다.)
안드로이드폰과의 통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시계 관련 기능 (시계, 스톱워치, 타이머, 알람)와 만보계, 그리고 심박 센서다. 아마 여기서 측정한 데이터를 폰으로 전송시킬 수 있을 듯한데, 당연히 그건 테스트해보지 못 했다. 만보계의 경우 일주일치 정보를 폰과 동기화하기 전에 캐싱해두고 있으며, 그 정보를 그래프로 표시해준다. 심박 센서 또한 주기적으로 사용자의 심박을 측정해 그 날의 심박수를 수치화해 보여준다. 물론, 따로 심박수를 측정해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능이 다른 메뉴에 따로 심어져있어(전자의 기능은 심박 센서 앱에, 후자 기능은 만보계 앱에 붙어있다) 처음엔 이 둘의 차이가 뭔 지를 몰라 헤맸다.
결국 얘도 안드로이드 웨어 기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UI는 구글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웨어의 UI에 스킨을 씌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UI, 정말로 헷갈린다. 처음에는 대체 어디로 밀어야될 지 몰라서 많이 헤맸다. 나중에야 익숙해지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몇 개의 기능만 쓰는데도 익숙해지는 데 이틀은 걸렸으니, 완전한 안드로이드 웨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려면 한 1주일은 걸릴 듯하다.
그리고, 문제의 배터리가 있다. 모토 360이 해외 리뷰들에서 자비 없이 까인 부분이 배터리인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스마트워치의 배터리 용량은 크기 때문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고, (모토 360의 경우 320mAh) 모토로라가 거기에다가 단가 절약을 위해 무려 4년 전에 나온 45nm짜리 공정의 TI OMAP3 프로세서를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프로세서의 공정이 작을 수록 전력 효율이 올라간다. 참고로 애플이 아이폰 6에 쓰는 A8은 20nm.)
모토 360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에는 그 악명을 제대로 떨쳐주었다. 6시간동안 1/3이 증발한 것이다. 대충 계산하면 18시간 정도면 배터리가 사망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 다음부터는 훨씬 더 오래 버텨주었다. 통신 기능을 꺼놓은 상태에서는 웬만하면 배터리가 하루 이상은 갈 수 있을 듯하다. 물론 통신을 켜는 순간 그 수명은 순식간에 줄겠지만 말이다. 이후에 모토로라에서도 배터리 효율을 개선하는 펌웨어를 내놓았다고 하니 좀 나아졌기를 바란다.
애플 워치가 더 기대되는 이유
IT의 발전방향에 대해 토론을 하다보면 늘 나오는 문제는 바로 새 기술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냐는 것이다. 웨어러블의 다양한 방향을 생각해보면 이 문제가 바로 대두되게 된다. 구글 글래스는 특히 이 문제에서 홍역을 많이 치뤘었다. 앞에 달린 카메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 운전중 시야 분산 등등 다양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는 이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시계라는 기본적 폼 팩터를 타고났으니 거부감이 훨씬 적고, 늘 차는 사람들은 시계가 있는 삶이 익숙하다. 웨어러블의 미래는 결국 스마트워치 쪽이 될 것이 자명하다.
물론 스마트워치가 가진 숙제도 있다. 일단, 배터리다. 배터리 기술이 토니 스타크의 아크 원자로 수준이 되지 않는 한, 스마트워치의 배터리는 하루이틀 정도면 사망할 것이다. 결국 프로세서 효율에서 이를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애플 워치는 필요한 경우 아이폰의 프로세서를 빌려 작업을 처리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른 문제는 바로 시계와 IT 기기의 근본적 정체성의 차이점이다. IT 기기의 성격상 스마트워치는 기술의 발전 등을 이유로 일반 시계보다 수명이 더 짧을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스마트워치를 기기로서 광고한다는 것도 일반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끌기엔 좋은 전략은 아니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공개된 애플 워치는 기대가 된다. 일단, 애플은 워치를 기기라기보다는 시계의 관점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보인다. 옛날 한 모델을 고수했던 애플답지 않은 두 가지 크기에, 세 가지 바디 피니시, 그리고 여섯 가지의 밴드 등 다양한 개인화 요소들이 돋보인다. 또한 디지털 크라운은 애플이 얼마나 기존 손목시계에 대한 오마주를 보이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조니 아이브가 그토록 싫어하는 스큐어모피즘의 귀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메인 폰은 아이폰이라는 것도 크다. 어떠한 연결 기능이 없음에도, 모토 360은 나에게 스마트워치에 대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애플 워치는 여기서 그 잠재력을 얼마나 더 끌어올릴 수 있을 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모토 360에 대한 내 평을 하자면 이렇다. 안드로이드폰을 가지고 있고, 만약 지금 당장 스마트워치가 필요하다면, 360은 현재로서는 최고의 선택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기다릴 것을 추천한다. 모토 360이나 안드로이드 웨어 모두 뭔가 완전한 완성은 아닌 기분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일단 애플 워치가 어떻게 나오는 지 지켜보도록 하자. 이제 스마트워치는 막 시작했다. 이 시장이 어떻게 발전하게 될 지, 꽤 궁금해진다.
4 replies on “[KudoTouch] 시계로서만 써본 모토 360.”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빨리 애플 워치가 출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제 Timex Chrono 완전방수 시계도 죽어서 대체품을 찾고 있는데… 이게 탐나네요… 미국 가면 꼭 애플것이랑 두개 사이에서 비교해보고…
ios 또한 일부기능 호환되며
G워치는 기어라이브랑 같이 나왔고
후에 모토360이 나왔습니다
수정부탁드릴게요
저 글을 쓸 당시에는 iOS 호환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