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쉬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IT 산업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참 듣기 힘든 단어가 됐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발전 속도가 더 빨랐던 IT이기에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좀 아쉽다.
IT 업계에서의 지난 1~2년은 그간 정신없이 달려왔던 기업들이 그 고삐를 늦추고 좀 쉬려고 하는 듯했다. 일단 스티브 잡스 사후의 애플이 그러하고, 삼성도 갤럭시 S4 등의 신제품을 보면 다분히 쉬어가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는 구글 I/O에서도 계속되었다. 구글 I/O(Input/Output, 입/출력)는 구글이 연중 진행하는 행사 중 최대 크기의 개발자 행사이다. (애플이 최신 iOS와 OS X을 공개하는 세계 개발자회의, WWDC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행사의 꽃은 구글이 그간 개발한 최신 신제품 및 서비스를 공개하는 키노트인데, 예년 이틀에 나눠서 진행하는 것과 달리 올해는 첫날에만 진행했다.
3시간 반에 달하는 키노트에서 구글은 많은 것을 공개했지만, “구글도 쉬어간다”라는 이미지를 벗기는 어려웠다. 일단 예전 I/O 때마다 늘 나왔던 새로운 안드로이드 업데이트 발표가 없었고, 크롬 OS도 참가자 전원에게 크롬북 픽셀을 나눠준 것 빼고는 딱히 언급이 없었다. 대신, 구글은 자신의 본래의 정체성으로 돌아간 듯했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라는 것 말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 OS 업데이트, 새 하드웨어, 구글 글래스
작년 I/O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4.1 “젤리 빈”을 공개했다. 6개월 전에 공개했던 4.0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의 .1 업데이트인 젤리 빈은 전반적인 UI의 프레임 속도를 향상시키는 프로젝트 버터와 새로운 알림 시스템 등이 적용되었었다. 11월에는 따로 이벤트를 가지지 않고 4.2를 공개했다. 펫 네임은 젤리 빈 그대로였다. 많은 사람들은 올해 I/O에서 안드로이드 5.0 “키 라임 파이”나 아니면 최소한 현 젤리 빈의 .1 업데이트인 4.3이라도 공개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구글은 그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4.3이 당장이라도 발표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차라리 이번 달에 나올 거라면 I/O에 살짝 끼어서 발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까. 물론, 이틀짜리를 하루로 줄이고, 그것마저 3시간 반의 길이였다보니 발표를 편집(?) 당했을 가능성도 있고, 겨우 몇 달 전에 안드로이드를 이끄는 수장이 바뀐 상황에서 뭔가 발표하기가 어수선했을 수도 있겠다.
딱히 새로운 안드로이드 하드웨어도 발표되지 않았다. 당장 작년 I/O 때만 해도 첫 넥서스 태블릿인 7인치짜리 넥서스 7과 미디어 스트리밍 기기인 넥서스 Q(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건 출시하기도 전에 구글이 일찌감치 없애서 그럴 거다.)가 발표되었는데, 올해는 2세대 넥서스 7이나 새로운 넥서스 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삼성 갤럭시 S4에 순정 안드로이드 4.2를 올린 갤럭시 S4 구글 에디션을 선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HTC 원 구글 에디션도 출시되었다.)
잠시 주제에서 벗어나 이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기이한 스마트폰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갤퍼런스(갤럭시 + 레퍼런스의 조합어)의 위엄”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갤럭시 S 시리즈는 1세대부터 삼성에서 행하는 엄청난 OS 개조로 인해 애초부터 “레퍼런스(기준)”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특히, 옛날에 국내 개발자들이 갤럭시 S를 기준 삼아 개발을 했더니 오히려 순정 안드로이드에서 제대로 안 돌아가더라라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할 정도다.
거기에다가 갤럭시 S4에서 삼성이 조금씩 구글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업계에서는 삼성과 구글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퍼져있는 상태였다. 구글 입장에서 삼성은 이러나 저러나 안드로이드를 키워준 일등공신이었기 대문에 이러한 우정의 증표(?)로 이 폰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아직 친해요”라는 외침과 함께.
물론, 당장 작년 11월에 넥서스 4가 나와서 아직 후속 제품도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을 상황이었을테고, 게다가 이 넥서스 4가 “전세계에서 모두, 동일없이, 문제없이 작동되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LTE를 달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반발을 꽤나 받은 구글 입장에서는 LTE를 지원하는 순정 안드로이드폰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급한대로 이미 하드웨어가 준비되어 있는 갤럭시 S4에 순정 안드로이드를 올려서 출시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나 저러나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흥미로운 조합의 스마트폰임은 분명하다. (특히, 삼성 소프트웨어를 얹은 갤럭시 S4를 만져보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문제는 아무래도 구글에게 하드웨어 통제권이 없다보니 649달러라는 환호하던 청중들을 바로 침묵시키게 만든 가격이 있다. (이와 비교해 넥서스 4는 299달러.) 이는 미국에서 애플이 파는 아이폰 5의 언락폰 가격과 동일하다. 넥서스 4의 6개월동안 진행됐던 지지부진한 국내 출시 과정을 고려하면, 국내 출시 가능성은 매우 적다.
구글 글래스에 대한 발표 내용도 전무했다. 작년 I/O에서 샌프란시스코 상공에서 글래스를 끼고 스카이다이빙하는 보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난 후, 현장에서 1,500달러의 가격에 주문을 받은 프로토타입, 일명 “탐험가 에디션”이 몇 달 전에 배송을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올해 I/O에서는 참가자들을 위한 체험 부스만 준비했을 뿐, 다른 언급은 없었다. 물론, 올해 내 소비자용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별도 이벤트를 진행할 가능성은 있겠다.
올해의 주제: “초심”
구글 I/O 2013은 여러모로 올해 구글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행사였다. 구글이 처음에 검색 서비스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네이버가 70% 가량의 검색 점유율을 자랑한다지만, 구글은 전세계에서 70% 가량의 점유율을 보인다. 심지어 내가 몇년 전 자료를 봤을 때,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98%에 달하는 점유율을 보인 곳도 있었다. 이는 미국에서의 점유율보다도 높은 것이다.
현재의 구글은 물론 검색 뿐만 아니라 이메일, 지도, 연락처, 캘린더의 기본적 포털 서비스는 물론이고, 컨텐츠 판매, 음악 스트리밍, 그리고 심지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까지 하는 거대한 인터넷 포털 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럴 뿐, 전체적 크기만 봐도 네이버는 구글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올해 구글 I/O는 안드로이드와 크롬 OS 등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아닌 이러한 인터넷 서비스에 초점을 두었다.
먼저, 구글이 처음으로 데스크톱용 구글 지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꾸준히 발전해온 안드로이드용과 iOS 6에서 애플이 자체 지도로 바구면서 올해 초에 나온 iOS용 앱의 최신 기능을 거의 대부분 적용시켰다. 이제 지도 타일은 벡터 방식으로, 훨씬 유동적인 확대가 가능하고, 사용자의 관심사나 검색 결과에 따른 다른 지도 표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음식점을 검색할 때 지도에서 주변에 다른 음식점들을 보여준다던지 등이다. 이러한 기능은 이제 지도가 이미지 기반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이다.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법규상의 문제로 벡터 지도는 지원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구글은 여름에 다양한 신기능을 추가한 모바일 (안드로이드, iOS) 앱 또한 배포할 예정이다.
구글은 새로운 메시징 플랫폼인 행아웃도 공개했다. 바벨이라는 코드명으로 더 친숙한 이 앱은 안드로이드, iOS, 지메일, 구글+ 등에서 실시간 채팅을 할 수 있는 채팅 플랫폼으로, 구글답게 모든 메시지는 클라우드에 저장되며, (원한다면 이를 끌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채팅을 바꿔가며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구글 플러스 기능 추가, 안드로이드 뿐만 아니라 타 플랫폼에서도 지원하는 구글 플레이 게임, 그리고 데스크톱에서의 대화식 음성 검색 지원 등은 구글이 부업인 안드로이드보다 주업인 포털 서비스의 부분에 더 집중했다는 모습이 보인다. 구글에게는 그 자체가 초심인 셈이다.
구글이 보여준 또다른 초심의 부분이 바로 I/O의 초심, 즉 개발자들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겠다. 구글은 이번에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라는 것을 공개했는데, 이것은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할 수 있는 전용 코딩 인터페이스다.
또한, 위에 나열한 구글 플레이 게임도 결국 개발자들의 게임 개발을 장려하기 위한 구글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구글 I/O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구글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구글 I/O 키노트. 만약 세시간 반에 달하는 시간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