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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마이크로소프트. 한때 내 우상이었던 회사였다. 하버드를 중퇴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기는 어릴 때 전기집으로 몇 번은 읽었을 정도로 존경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한때는 윈도우 비스타에 빠져 메인 노트북에 RC1을 설치하는 모험(!)까지 하기도 했다. 결국 힘겹게 XP로 돌아와야 했고, 비스타는 참담하게 실패했지.

어찌됐든, 요즘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가 옛날같지 않다. 뭐 옛날부터 옛날같지 않았지. 이는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사업부 (실제로 그런게 있는진 모르겠지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일단, 구닥다리 플랫폼인 윈도 모바일에서 윈도우 폰 7까지 움직이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자. 윈도우 모바일 6가 2007년에 첫선을 보였을때, 남쪽에 위치한 애플에서는 아이폰을 선보였다. 풀 브라우징을 지원하는 인터넷 브라우저, 미려한 UX 등은 당시 써드파티 앱 미지원, 복사 붙여넣기 등의 기본적 기능도 지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홀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다음해에 앱 스토어가 출범된 이후로는, 스마트폰계의 독보적 강자로 떠올랐다. 이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뭘 하고 있었는가? 윈도우 모바일 6에서 6.1로 올라갔다. 그게 다였다.

Windows Mobile 6.1

그 뒤로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다리 찢어지는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다음해, 애플이 iOS 3와 아이폰 3GS를 내놓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급히’ 윈도우 모바일 6.5를 내놓았다. 이건 괜히 지어낸 말이 아니다. 당시 개발을 시작한 윈도 폰 7이 예상보다 늦게 나올 것같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전혀 예정에 없던 빌드였는데도 불구하고, 6.5는 나름 터치 스크린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내부는 같은 구닥다리 6버전이었다. 옴니아 2의 업그레이드 논란이 벌어졌던것도 바로 이 6.5였다.

Windows Mobile 6.5.3

당시 IT 언론들은 잔인했다. ZDNet (한국 찌라시 버전 말고)은 “윈도우 모바일은 죽은 플랫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고, CNET에서는 “윈도우 모바일은 이제 ‘그땐 그랬지’ 상태로 밀려버렸다” 라고 일격을 가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스마트폰 제조회사들이 윈도우 모바일을 버리고 안드로이드를 채택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윈도우 폰 7을 돌리고 있는 삼성 옴니아 7.

다음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건 완전히 뒤바꾼 윈도우 폰 7을 발표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발표된 윈도우 폰 7은 참 혁신적인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이브 타일이나, UI 디자인 등.. 꼭 회사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인 Xbox 팀의 인력을 가져와 OS를 완성시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늦었다. 이미 윈도우 모바일의 점유율은 한자리대로 추락한 뒤였고, 1년 전에는 뒤쳐져 있던 iOS가 이제는 멀리감치 윈도우 모바일을 추월한 뒤였다. 거기에, 발표가 됐던 2월에서 한 세 달 내로 출시가 되면 좋으련만… 거기서 또 9개월 뒤인 11월에야 정식 출시가 됐다. 결론적으로 맨 위 질문에 답하자면, 3년하고도 10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에 안드로이드는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했고 (가트너의 자료에 따르면, 1년동안 무려 8배의 성장률이었다), 윈도우 모바일의 점유율은 거기서 또 1/4토막이 나고 말았다. 아직 작년 가트너의 2010년 4/4분기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각종 기사들로 봐서는, 별로 상황이 희망적이진 않다.

2010년 3/4분기와 2009년 3/4분기의 스마트폰 OS 점유율 (출처: 가트너)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실수를 반복하려 들고 있다. 바로 태블릿에 관한 소식인데, 2012년 가을까진 없단다. 2012년. 가을. 내년이다. 아직도 1년 반 뒤의 미래다. 그때쯤이면 벌써 내 군대생활의 반이 흘러갔을 때이다. 장난하는가?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OS (윈도우 폰 7) 기반 대신, 데스크톱용 윈도우 기반으로 태블릿을 만들으려 한다는 것은 언급도 하지 않겠다. (했군. 젠장!) 그거야 뭐 기호가 갈릴 일이니까. (실제로, 아이패드나 허니콤같은 태블릿 전용 OS 대신 윈도 7을 선호한다는 분들이 몇분 계셨다. 난 아니다.) 다만, 그건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적화를 잘해줘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암울하다.

Xbox 360용 모션 컨트롤러인 키넥트.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든 사업부들이 이런 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업부는 바로 Xbox 팀이다. 제일 발전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의 키넥트는 소프트웨어가 좀 병맛같긴 했어도, 센서 자체는 혁신적이었다. 얼마나 혁신적이었으면, 내가 작년의 가젯에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순위권에 들이는 이변이 펼쳐졌겠는가? 하지만, 다른 사업부들은 전부 지지부진하다. 그중 가장 최악인 곳이 바로 모바일 사업부와 윈도우 사업부인 것 같다.

모바일 사업부는 앞에서 신랄하게 깠으니, 이제 윈도우 사업부를 까자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를 언젠가 완전히 다시 만들 생각을 하고 있긴 할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모두 구 버전을 기반으로 손본 것들밖에 없다. 그나마 윈도우 폰 7은 완전히 새로 쓰긴 했다만, 윈도우는 도무지 ‘이전 버전과의 호환성’을 이유로 도무지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아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워낙 윈도우는 프로그램 수도 많다 보니 그거 호환성 다 생각하려면 버리기가 힘들다. 실제로 윈도우는 미친 정도의 하위 호환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윈도우의 개발 기간도 길어지고 (비스타는 뭐… 할말이 없지) 점점 성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다소 비효율적이랄까.

결론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반적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 1) 트렌드를 못 따라잡는다. 트렌드에 반응하는데만 몇년이 걸린다. 2) 구시대적 유물을 못 버린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려면, 뭔가 내부적 변화가 필요하다. 일단 트렌드에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거대한 회사의 사이즈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뭔가가 필요하고, 구시대적 유물을 못 버리는 건, 비난을 받을 지라도, 언젠가는 버려야한다. (윈도우 폰 7이 그랬던 것처럼.)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빌 게이츠가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문득 게이츠 아저씨가 있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리워진다.

[사진출처: Wikipedia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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