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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회고.

회고라는 개념 자체가 점점 소위 “Peer pressure”가 되어가는 기분이 드는 건 정녕 기분 탓일까. 사실 2019년은 회고를 스킵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또 2019년 마지막 날에 억지로라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업데이트: 그렇게 다음 해가 되어서야 끝냈다고 한다)

올해는 사진보다는 조금 더 글로 풀어써볼까 한다. 올해는 내 인생에서 변화가 꽤 큰 해였고, 이런 느낌은 사진보다는 글로 더 잘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렇다고 사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뉴욕 생활, 그리고 외국인 생활 종료

서울로 돌아오는 날 마지막으로 찍은 뉴욕의 모습.

단연 지난해 가장 큰일이 아니었나 싶다. 6월 말에 뉴욕 생활을 청산했고, 이와 함께 10년 정도 되었던 내 미국 생활도 종지부를 찍었다.

2005년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유학을 가고 나서, 군대와 잠깐 더기어에서 일하던 때를 제외하면 계속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했다. 남들이 들으면 부러운 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뭔가 늘 불안했던 때였다. 어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인 거 같은 기분. 사실 그래서 대학교 생활을 청산하는 대로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었으나, 지금 다니는 회사의 대표님이 뉴욕에 자리를 제안하셔서 뉴욕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돌아왔을 당시에 “비자가 만료돼서” 들어왔다고 했으나, 사실 원한다면 연장을 할 수는 있었다. STEM 학부생은 미국 회사에서 잠깐 일해보라고 기본적으로 주는 12개월에 24개월 연장 신청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뉴욕에서 3년을 살았다가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아질 거 같다는 고민과 함께 이젠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에 한국으로의 전출 신청을 했고, 기존에 생각했던 9월보다 3개월 정도 일찍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미국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운 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 정착된 생활이 더 좋다.

한국으로의 전출, 그리고 적응

8월에 현재 자리를 잡고나서 찍은 샷.

기존 계획(9월 말)보다 이른 일정으로 한국으로 전출하게 되면서 내가 여기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바로 일에 뛰어들면서 해야 했다.

그 고민은 결국 3~4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직접 회사에서 부딪히면서 조금씩 풀어나갔다. 일단, 기존에 뉴욕에서도 하던 고객 기술 지원 일을 한국에서도 계속 맡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 뉴욕에서 (아무도 할 줄 몰랐기에) 도맡았던 IT 관리 직무도 서울과 뉴욕 전체를 아우르는 IT 매니저로 진화했다. 거기에 필요할 때마다 번역을 도와주고 있다. (마침 올여름과 지난달에 론칭한 마케팅 웹사이트 모두 내가 번역을 담당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배웠던 건 사내 IT 관리와 번역 쪽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다른 회사에서의 “전산” 부서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상당히 초라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IT 기업은 개발 플랫폼과 사용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관리도 전산 부서의 담당이겠지만, 사실상 내가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IT 부서 이전에는 이 부분을 모두 제품개발팀과 이를 이끄는 CTO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역시 CTO가 혼자 담당하고 계셨던 장비와 SaaS 서비스 관리, 그리고 제품개발팀 이외의 사원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제품개발팀 쪽은 웬만해서는 각자 자신이 겪는 IT 관련 문제들을 거의 모두 자체적으로 처리하실 정도의 역량이 있는 분들 이어서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IT 매니저로서의 업무는 결국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언제 누군가의 맥북 키보드가 고장 날지 모르고, 누군가가 맥북에 맥주를 쏟을지 모르는 일이며, 누군가의 소프트웨어가 갑자기 동작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IT 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결국 해당 문제를 겪는 직원들이 매일 하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해지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비 PC를 준비해두는 것. 특히 사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맥북이 고장 나서 애플 스토어에 맡기면 해당 직원은 최소 1주일 정도 자신의 컴퓨터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예비 맥북을 두세 대 정도 구비해두었고, 이제는 이러한 상황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직원들 모두 드롭박스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잘 활용하고 있어서 따로 백업을 한다던가 그럴 필요는 웬만해선 없었다. 그거까지 고려해야 했더라면 상당히 골치가 아팠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번역에 참여했던 회사의 새로운 메인 마케팅 웹사이트.

그리고 번역. 비록 세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적은 작업량이지만, 실제로 작업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마케팅 웹사이트 번역은 내가 여태까지 했던 번역 중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다. 우리 회사의 마케팅 담당은 노르웨이인이기 때문에 마케팅 자료가 영어로 먼저 나오는 편이라 나는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마케팅 용어 자체가 언어유희와 숨은 의미가 난무하다 보니 결국 상당 부분(특히 표어)을 의역해야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디자인상 글자 수를 제한해야 하는 디자인 팀이나 내가 처음에 의역한 부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마케팅 팀 및 임원진과의 끊임없는 토론이 계속된 끝에 번역이 마무리되었다. (1차 번역이 끝나고는 나도 연말 휴가를 가는 바람에 최종본은 홈페이지 공개 때가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 막 들어왔을 때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의 불안감은 한 4개월 정도 계속되었고, 그때는 자신의 할 일이 확실한 다른 직원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안감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직접 리드하고 있는 고객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니 당분간도 바쁜 나날을 보낼 거 같다.

결국 일을 더 키운 쿠도캐스트

쿠도캐스트 본가 호스트 샷.

그리고 내 개인 프로젝트인 팟캐스트 쿠도캐스트. 2018년에 다시 정기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2019년이 정말 처음으로 한 해 내내 꾸준히 방송한 해였다. 올해를 돌아보면 100회 돌파와 더불어 총 42회의 방송을 했다. 이따금씩 세 호스트 간의 일정 조율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휴방한 적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꽤 준수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늘어지는 때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시동을 걸면서 결국 1년을 버텨낸 거 같다.

물론, 여기에는 스핀오프인 쿠도캐스트++(일명 “2P” 아니면 “고깃집”)를 빠트릴 수 없다. 중반에 있었던 “스파이더맨 파경 시국”을 위한 특별방송을 기획하다가 얼떨결에 같이 기획하게 된 2P도 벌서 5회를 넘겼다. (편집 일정 등의 이유로 얘까지 매주 방송하기는 어려워서 결국 격주로 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제대로 된 주간 일정이 성립되지 않았던 것은 아쉽다. 물론 다들 각자의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라 녹음 일정이 일정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언제 녹음하냐에 따라 내 편집 일정까지 꼬이게 되는 건 아쉬웠다. 특히 최근에는 녹음 후 업로드까지 거의 1주일 가까이 소요되는 상황도 많아지고, 이번 달에는 2P까지 겹치면서 편집해야 할 회차가 세 개로 늘어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통근 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집에만 오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게 개인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취를 하자니 돈이 없고….

2020년 목표

  • 기록을 좀 더 하자: 사실 2019년부터 Day One을 이용해 이런저런 기록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었다. 다만 중간중간에 까먹고 이러는 일이 꽤 있었던 거 같다. 사실 그 날 찍은 사진 하나만 코멘트와 함께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난 “기록”이라는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조금 사소하더라도 좀 더 자주 기록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글 좀 쓰자: 위와 비슷한 맥락인데, 올해는 백투더맥 관련 활동이 상당히 뜸했었다. 회사 일에 집에 오면 쿠도캐스트 일이 겹치니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 것인데, 올해는 글을 쓰는 것에 좀 더 밸런스를 잡아보고 싶다.
  • 운동 좀 하자: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2019년에는 재미라도 찾아보고자 오큘러스 퀘스트와 비트 세이버를 구매해서 해봤다. 실제로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운동하는 게임인 링피트 어드벤처를 구매한 뒤에도 운동하는 빈도가 점점 떨어져 갔다. 올해는 이 빈도를 다시 올려보고 싶다. 2월에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되면 집에서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니 체력이 좀 생기지 않을까.
  • 사람 좀 만나고 다니자: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여태까지도 친한 사람들 중 일부를 보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회사와 집 사이의 엄청난 통근 거리(벌써 4관왕이다)에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냥 친한 회사 사람들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올해에는 회사 밖에 있는 사람들도 좀 보고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사진 좀 찍고 다니자: 올해 초반에는 그래도 사진을 많이 찍고 돌아다닌 거 같은데, 후반부에는 아이폰 카메라 테스트를 하다가 그렇게 카메라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올해에는 좀 더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녀야할텐데.

쿠도군 어워즈

이미 쿠도캐스트에서 망 어워즈를 하긴 했지만, 여긴 내 개인적인 리스트를 적어볼까 한다.

  • 올해의 지름 – 에어팟 프로: 올해 에어팟이 두 번 나왔고, 나는 결국 두 번 사야 했다. (학교 후배 한 명한테 2세대 에어팟 나올 때 그냥 사라고 부추겼는데, 프로 루머가 뜨자 페이스북에서 나를 멘션 하더라…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땐 미안… 🙏🏻) 하지만 에어팟 프로는 다시 살 가치가 있는 제품이었다. 특히 대중교통 통근 시간이 긴 내 입장에서 에어팟 프로는 내가 듣는 음악, 팟캐스트, 혹은 보는 영상에 집중하게 해 주고, 아침에는 노이즈 감쇠를 켜놓고 유튜브에서 백색소음 영상을 튼 다음 약간의 잠이나마 보충해줄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오른쪽이 고장 나서 수리를 맡길 때까지 다시 원래 에어팟을 쓰고 있는데, 그 조용함이 그리워진다. 역시 에어팟은 팀 쿡 시대 최고의 애플 제품이 아닐까 싶다.
  • 올해의 게임 –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 뉴욕에서 살 때는 위리브에 TV가 붙박이로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하기가 좋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직장 동료의 15인치 모니터를 빌려서 거기에 콘솔을 연결해 게임을 하는 실정으로 전락해버렸다. 거기에 팟캐스트 편집도 해야 하니 게임할 시간이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스위치는 링피트를 살 때까지 또 멀어졌다) 그 와중에도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은 오랜만에 매일매일 짬을 내서라도 게임을 할 계기를 제공해줬다. 게임 플레이도 제다이가 된다는 그 카타르시스와 적당한 난이도를 잘 배합했으며, 처음에 들은 배경만으로는 대체 어떻게 스토리가 진행될지 감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특히 스타워즈를 좋아한다면 꼭 강추하고 싶은 게임이다.
  • 올해의 영화 – 포드 v 페라리, 나이브스 아웃: 사실 이 둘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어차피 내 마음대로 고르는 거니 둘 다 골라버렸다.
    “포드 v 페라리”는 특히 소리가 아름다운 영화다. 포드 GT40의 웅장한 V8 엔진음도 있지만, 수동 기어를 넣을 때의 그 철커덕 소리는 정말로 수동을 다시 몰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할 정도다. (참고로 내 인생에서 수동을 몰아본 건 1종 보통 면허시험을 봤을 때와 뉴욕에서 수동 포르셰 카이맨을 몰아본 것, 딱 두 번이다) 또한, 내용도 차나 레이싱 덕후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같이 본 나름 차를 안다는 회사 동료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봤는데도 재밌게 즐겼다고 얘기했다.
    “나이브스 아웃”은 전형적인 추리물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다. 추리물 좀 본다 하는 사람이라면 진범이 누군지는 뻔하게 추측이 가능하다. 다만 “나이브스 아웃”이 대단한 것은, 그 종착점까지 가면서 계속되는 반전 플롯이다. 이런 플롯 포인트들을 보며 “내가 틀렸나…”를 의심하게 된다. 그렇게 정통 추리물을 비튼 것이다. 스타워즈를 비틀어서 팬덤을 혼란으로 몰고 갔던 감독(라이언 존슨)답다. 거기에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한 주연 멤버들의 연기도 밸런스가 잘 맞는다. 이후에 영화 N회차를 위한 감독 코멘터리가 공식 사이트에 떴는데, 언제 영화관에서 그걸 들으면서 시청해보고 싶다. 이미 다 내려갔겠지만.

마무리하며.

이 부분을 쓰기 위해서 작년에는 내가 어떻게 썼나를 다시 한번 보았다. 이 때는 이렇게 적어놨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은 하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계속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 미래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뭔가에 착실히 준비해 간다면, 나쁘진 않을 거 같다.

난 이 말에 어울리는 2019년을 보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다. 2019년이 시작되면서 최대 불안요소 중 하나였던 한국 생활로의 전환도 생각보다 잘 이루어졌고, 쿠도캐스트도 나름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방송했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했다고 하고 싶다.

이제 내년에도 계속 하자. 아니, 더 잘 하자.

지금까지 이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2020년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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